이재호 박사의 전쟁과 섭리 | 이스라엘의 민족형성기 - 자유의지, 좌절 그리고 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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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광야에서 치른 르비딤(Rephidim) 전투는 이스라엘자손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일깨움이었으며 또한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진화였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족에서 규모있는 민족국가로 거듭난다. 효율적인 백성 통제와 이방부족들과 구별되는 삶을 위하여 백성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칙, 관습, 제사의식, 그리고 도덕/윤리규범 등이 이 무렵에 제도화됐다. 그리하여, 기원전 18세기경에 이미 도시국가를 형성하여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한 바벨론을 제외하면, 근동의 부족국가 중, 소위 '와이크라'라고 불리는 성문법 체계를 가진 유일한 민족국가로 발돋움 하게된다.   
르비딤전투 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또는 호렙산)으로 이동, 이곳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 그리고 시내광야로 나아와서 이 곳에 성막을 짓고 1년 남짓 체류한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니, 이제는 동족간에 다툼이 부쩍 잦아졌다. 모세 혼자서 200만명 이상의 백성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가라는 기본틀이 아직까지 형성되지 않았고, 야지에서 생활하다보니 기본적 생존권과 관련된 충돌이 많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개인간 분쟁이 점진적으로 이웃간의 소유권분쟁, 나아가 윤리적 문제로 비화되었다는데 있었다. 비로소, 강력한 질서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두가지 계획을 세운다. 첫째는 백성의 통제방식으로 피리미드식 조직관리체계를 적용하기로 했다. 모든 백성을 조직체계에 묶어 효과적으로 관리 및 통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두번째는 유사시에 백성을 보호할 군사체계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이는, 가나안 입성 전후에  직면할 외부의 적과의 전투에 대비한 조치였다.     
먼저, 내부의 질서를 도모하기 위하여 모세는 유능한 자를 선발, 백성들의  우두머리로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직책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이라 호칭하여, 이들로 하여금 무리들의 송사(訟事)를 담당하게 하였다. 일의 규모와 사건의  경중(輕重)에 따라, 오십부장-백부장-천부장 순으로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중요한 사건은 모세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는 오늘날 3심제도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과업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레위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 중, 20세이상 전투가능한 남자 장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지시했다. 최종적으로 가용인원을 집계하니 총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이다. 현재의 한국군 병력수준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 병력을 4개제대로 편성하였다. 숙영시나 행군시 반드시 제대단위로 행동하게 하였으며, 이를 통제할 지휘관도 지파별로 세웠다.  
소규모 작전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하여, 송사사건을 담당함과 같은 규모로 오십부장, 백부장, 그리고 천부장을 군사 지휘관으로 세웠다. 그리고, 지휘관 및 각 제대가 행동할 통제규칙을 정하고 군기(軍旗)도 제작하여 행군시 각 부대의 선부에 위치시켰다. 이제 제대로 된 군대의 위용을 갖춘 것이다.       
애굽을 탈출한지 2년째에, 새롭게 조직된 이 편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광야(The Wilderness of Sinai)를 출발하여 바란광야(The Wilderness of Paran)쪽으로 행군했다. 보름만에 가데스 바네아(Kadesh-banea)에 도달했다. 이 곳은 오아시스가 있는 성읍으로서 가나안땅에 곧장 진입할 수 있는 남쪽편 초입이다. 여기서 가나안 중심지 헤브론까지는 불과 80km로 3일이면 족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모든 백성의 마음에는 미지의 땅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한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이곳에서 보여질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그것과의 충돌, 그로 인하여 향후 이스라엘백성이 감내해야할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가데스 바네아는 모세와 이스라엘백성 제 1세대들에게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다시말해, 택함받은 백성들에게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 준 장소였다. 우선, 이스라엘백성에 대하여는, 바로 이 곳에서 애굽에서 탈출한 제 1세대가 ‘광야에서 죽을 징계’를 받았다. 그들의 보호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 . .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은 이를 의심하여 자체적으로 정탐병을 운용하기로 한 것이다. 신탁이 아닌, 사람 눈으로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직접 확인하고 행동하겠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의 발로였다. 이들의 행위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으로 간주되어, 이 백성은 40년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죽게되는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앞에서는 그것은 정의였다.   
다음으로, 그토록 하나님앞에 충성스러웠던 모세조차도, 단 한번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형벌을 받은 곳도 바로 이 가데스 바네아였다. 백성들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건만, 그는 지팡이로 반석을 쳐 물을 내므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 행위로 인하여, 그는 가나안땅을 밟기 전에 죽어야 하는 징계를 받았던 것이다.   
여하튼, 이스라엘백성들의 요구에 의하여 모세는 정탐꾼을 운용하기로 했다. 각 지파별 12명을 선발하여 이들이 수집해야할 구체적 임무를 부여하고 40일내에 임무를 종료하고 그 결과를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40일후, 정찰병 12명이 무사히 임무을 마치고 돌아와 정탐결과를 보고한다. 동일한 지역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2명의 의견과 나머지 10명의 정탐결과가 다르다. 전자 2명, 즉 여호수아와 갈렙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우리가 능히 가나안 족속들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10명은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심히 견고하고 광대하여 이길수 없노라’고 한다. 백성들은 불리한 편에 귀가 솔깃하기 마련, 가나안족들이 그들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고 삽시간에 동요되었다. 심지어 회중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모세에 대적하였다.  
이즈음, 이스라엘은 그들의 수호자 ‘여호와 닛시’를 잊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펼쳐진 수많은 구원의 표적과 기적을 목도하고도, 그들을 향한 엘로힘의 사랑을 알지못하는 이 가련한 이스라엘백성을 어찌할까? 성경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날 때, 그들의 무능력을 한 작은 전투(Skirmish)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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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탐꾼의 정찰로>

정탐꾼의 보고로 갑론을박이 있은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행군대열을 돌려 홍해길로 하여 광야로 다시 들어가라 명령하였다. 목이 곧은 이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두 소멸할 동안 유기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들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 모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으로 속히 입성하고 싶은 마음에, 이들은 산길을 택하여 가나안땅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말렉족속과 가나안 거주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여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군대가 없을 때에도 애굽의 대군(大軍)에게 힘 한번 쓰지 않고 무사하였는데, 이제는 60만 대군을 보유하였음에도 강도떼 같은 족속에게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 사건은 보호함을 받지 못하는 이 백성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섭리(攝理)였다. 
애굽을 떠난지 2년여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자유의지가 강한 이스라엘자손들을 교육하는 시기였다. 다시 말해, 그들로 하여금 신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도록하는 보정기간이었다. 그들의 끊임없는 불평과 회의,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 대한 도전,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까지 부정하는 참으로 완악한 국민적 근성은 결국 여호와께서 직접 인간사에 개입하여 그 세대 전체를 백성 가운데에서 잘라내는 결단을 하게 하셨다. 그들은 실존주의 철학자가 말하는 소위 ‘자유의 부조리’의 대상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이 올바르게 이해해야할 역사적 조명이 있다. 그것은 이 징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계획이 단지 한 세대 순연(順延)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이 그 분의 공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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