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 삶 속의 미술향기: 동무들아 나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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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했는데도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이라고 굳이 느끼는 이유는 아무래도  9월에 접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필자가 본국에서 느꼈던  여름이 막 지나는 길목의 이른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다 쌀쌀한 차가운 공기에 흠칫 놀라던  9월의 가을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쌀쌀한  가을은 없지만 다가오는 아시안 페스티벌을 위해 추석을 주제로 원생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도 본국의 가을을 가까이 느껴봅니다.
우리와 같은 문화권인 중국계 학생부터 백인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타 문화권 학생들이 그려내는 한국의 자연 풍경, 초가집, 강강술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취를 품어내는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명절날의 정경이 무척 그리워집니다.어린 시절  삼촌댁에서 먹던 송편의 맛이 새삼스럽게 그립게 떠오르다가  몇 해전에  돌아가신 삼촌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집니다 .
은은한 달빛이 전해주는 평화로움이 공부를 하느라 애쓰는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편안히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 전에 하버드 대학생들의 삶을 조명하는 책에서 읽은 한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국의 자동화 회사인 포드사에서 새로 개발한 모터가 고장이 났습니다.유수의 인재들이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지를 못하자 그 당시의 최고의 전기 공학자였던 찰스 스타인 메츠(Charles Steinmentz) 에게 의뢰를 하게 됩니다.스타인 메츠는 모터를 살펴본 뒤에 회로 기판을 가져와서 선이 하나 끊어졌다며 간단한 선을 그려서 보여 주었습니다.그 후에 그가 청구한  청구서에 적혀있는 금액이 무려 일 만 달러에 이르자 공장직원들의  바가지가 지나치다는 말에 그는 청구서에 ‘선을 그린 가격 1달러,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아는 것에 대한 대가 9,999 달러’라고 적었습니다. 이 일화에서 스타인 메츠가 그가 아는 지식의 가치를 9,999로 말한 것처럼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이 현대 사회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대일수록 결국은 성실히 쌓아가는 지식으로 치열한 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간단 명료한 해답에 기초를 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보니 이런 노력하는 자들의 노력을 보지 않고, 거둔 열매만을 탐내고 흉내 내는 자들도 많아지는 현대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심심치 않게 학벌 위조 사건이 불거져 나옵니다. 본국도 마찬가지여서 연예인부터  ‘나 이대 나온 여자예요’하는 유행어를 만들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지적인 캐릭터의 대명사였던 연극 배우,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광에다가  명문 예일대를 졸업했다며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허위 학벌이 밝혀져서 실망과 함께 아연 실색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성실한 자들의 노력이 이런 정직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로 인해 가려져서는 안되리라고 생각합니다.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성실한 노력이지 학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물질을 훔치는 자보다 경력을 훔치는 자를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사회에 불신이 싹트고,  성실이 노력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공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회 도처에 자리 잡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신뢰는 작은 구멍이 나서 제방이 무너지는 위험에 처한 네덜란드를 자신의 작은 주먹으로 밤새 막아서 나라를 구한 소년의 주먹처럼  우리 모두가 지켜 나가야 할 사회의 기본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고,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대원 서양화가(1921-1995)는 정규 미술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경성 제대 출신의 법학도 화가로서 홍대 총장까지 역임하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과 함께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입니다. 경복 고등학교 시절 조선 미전에 입선하여 그의 재능을 보여준 화가는 법관이 되야 한다는  집안의  권유에 못 이겨 경성대 법대에 진학하였으나, 결국 화가의 길을 걸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화단의 멋쟁이,화단의 신사로 불린 행복한 색채 화가입니다.그는 그의 그림의 테마인 파주의 농원에서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색채를 이대원 특유의  점묘법으로  풀어나가며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누구나 존경했던 따뜻한 인품과 해박한 지식,또한 각별한 제자 사랑과 앞선 안목으로 후배 작가들의 귀감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화랑인 반도화랑을 초대 운영하기도 하였으며,1950년대 당시의 5개 국어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외교 통상부 문화 홍보 대사로도 활동하였으며 홍대 교수, 홍대 총장, 홍대 명예 교수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오고 가는 캠퍼스 길목에서 뵈었던 이대원 교수님의 온화한 미소도 추석의 달맞이를 그리는 원생들의 손길과 함께   떠오르는 캠퍼스 정경의 그리움의 언저리에 묻어납니다.
실력만 있다면 명문 미대를 나오지 않고도 미술의 명문인 홍대 총장까지 지내며 또한 교수로서 후학까지도 양성한 이대원 화백을 보면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아니라 진정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은한 달빛의 여운처럼 이대원 화백이 그린 나무는 화려한 색상임에도 가을의 여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필자가 자란 본국의 산천의 정취가 듬뿍 묻어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가을, 옆에 있는 친구들과 손잡고 달맞이를 나가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고 누구나 기꺼이 손잡을 수 있는 사회가, 추석 보름달만큼 성큼 우리에게 다가와서 환히 비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넉넉한 마음. ‘동무들아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김주연·(현)샤인미술학원 원장
서울 예고 졸업|홍대 미대  BFA|DBU MLA
서강대학교 심리상담 연구소 P.E.T. 훈련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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