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48대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왕은 이 사실이 창피해서 복두장이에게 지시해 두 귀를 가릴 수 있게 두건을 만들게 하고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복두장이는 입이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지만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도림사 대나무숲 속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소리가 나서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수유를 심게 했는데, 그 뒤부터는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났다.
삼국유사 경문대왕조에 전해지는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경문왕의 귀가 길어진 이유를 그의 실정에 대한 응보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도 전해지고 있다. 바로 미다스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다스 왕이라 하면 흔히 그가 만지는 것은 다 황금으로 변하게 했던 ‘황금의 손’을 연상하게 되는데, 팍톨로스강에서 머리와 몸을 씻은 후 그 저주에서 벗어난 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즉, 이 일이 있은 후 미다스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시골에 살며 목양의 신인 판(Pan)의 숭배자가 되었는데 판이 자신의 피리 솜씨를 과신하여 아폴론의 수금 솜씨에 도전해 보기 좋게 패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미다스는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심판의 공정성을 의심했다.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이렇게 무식한 귀를 더 이상 본래의 모습으로 두고 보기가 싫었다. 미다스의 귀를 길게 늘여 안팎에 털이 나게 하고 귀뿌리로 그 귀를 움직일 수 있게 하여 당나귀 귀처럼 만들어 버렸다. 두건으로 두 귀를 감출 수는 있었지만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 이발사에게까지는 감출 수가 없었던 미다스왕은 이발사에게 이 사실을 토설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비밀을 토설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이발사는 들판으로 나가 구덩이를 파고 그 비밀을 말한 다음 구덩이를 덮고 돌아왔다. 그 후 구덩이 위에 갈대가 자라나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가 이 비밀을 속삭였다는 것이다.
경문왕의 이야기나 미다스왕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바로 잘못된 판단이다. 그 잘못된 판단이 경문왕의 실정으로 이어지고 당나귀 귀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된다. 미다스왕도 황금의 손을 얻은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닫기는 했지만 그 이후 목양의 신인 판에게 빠져서 대결의 결과를 놓고 공정성을 잃어버리는 왕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것이 당나귀 귀를 얻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광화문 앞에 가면 해치(해태)상을 볼 수 있다. 해치는 중국 요순시대에 태어났다는 상상의 동물로서 옛 문헌에 의하면 정수리에 뿔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죄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한다. 순 임금 때 형벌을 담당했던 고요라는 한 현명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형벌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바른 판결을 내려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어떤 사람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야 할 때 그는 기르고 있던 해치를 그 사람 앞에 세웠는데, 해치는 죄가 있는 사람은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해치를 광화문 앞에 세운 이유도 바로 이러한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관리들로 하여금 궁궐을 출입할 때에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올바른 정치를 펴게 하려는 의도로 궁궐 입구에 해치상을 세웠고 실제로 조정의 신하들이 광화문을 드나들 때마다 이 해치 꼬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다듬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까지만 해도 관청 문 안에 들어서면 항상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세이대(洗耳臺)가 있었고 여기에서 귀를 씻고서야 비로소 대청에 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귀를 더럽힌 세속의 잡념들을 깨끗하게 씻어 없애는 통과의례를 거친 다음 깨끗해진 귀와 맑은 마음으로 백성들의 말을 듣고 처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행정의 현장을 도청이니 군청이니 무슨 무슨 ‘청(廳)’이라 이름하는 것도 백성의 소리를 듣는〔聽〕 집〔广〕이라는 의미이다.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이는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있는 청두[成都]의 옛 이름인 촉(蜀)땅에서 유래된 말로서, 촉 땅은 산이 높고 안개가 짙은데다가 비가 자주 내려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연 중 며칠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해를 볼 수 없는 땅에서 어느 날 해를 보게 되면, 촉 땅의 개들이 오랜만에 하늘에 뜬 이상한 물체를 보고 요란스럽게 짖어댄다고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세상에는 상식이 있고 비상식이 있다. 매일 하늘에 해가 뜨는 것이 상식이고 해가 뜨지 않는 것은 비상식이다. 촉 땅 사람에게는 해가 안 뜨는 것이 비상식이고, 개에게는 해가 뜨는 것이 비상식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촉견폐일은 비상식적인 사람이 상식적인 사람을 헐뜯는 어처구니없는 세상 풍조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의 언행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그 비상식을 상식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청와대 안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떠받들리며 성장한 사람이 믿고 있는 상식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해태상이 서 있는 광화문 앞에서 울려퍼지는 백성들의 함성은 비상식일 뿐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실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나귀 귀를 붙여 준 것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실정을 바로잡아라는 염원이 상징적으로 신화나 설화에 투영된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취임 초부터 불통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뭇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당나귀 귀라도 붙여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해 보게 되는 까닭이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