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겸 목사 목회자 단상: 상상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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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상과 두려움 
이제 곧 세 살이 되는 막내는 요즘 말 배우기에 한창입니다. 녀석이 곧잘 말하는 단어 중에 “무서워”라는 말이 있습니다. TV를 보다가 음울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거나 험상궂게 생긴 캐릭터들이 나오면 “무서워”를 연신 외치며 아빠에게 달려오곤 합니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상상력이 자라기 시작하는 징후 중 하나라고 합니다. 첫째와 둘째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입니다. 취침 등을 꼭 켜놓고 잡니다. 어두움이 왜 무서울까요?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이 작동하게 되면 있지도 않은 존재를 실재처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상상력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흔히 갖게 되는 두려움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습니다. “가능성”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내 자녀가 건강하게 클 수 있을까?’ ‘이번 사업에 실패하면 어쩌지?’ ‘내 인생이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은 모두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대부분의 경우, 두려움은 현재 내가 보고 겪는 것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볼지도 “모르고” 겪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2. 두려움의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마음 안에 들어와 일단 자리를 잡으면 나의 감정과 의지를 지배합니다. 두려움이 힘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타당한 근거 때문에 두려움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받습니다. 농산물이 풍성한 땅, 그러나 거인족속들이 살고 있는 땅이라는 보고를 받자 온 백성들은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하나님의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버렸습니다. 정탐꾼을 보낸 것도 정확한 정보를 가져온 것도,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선택도 모두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등 떠밀리다시피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거나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그러한 선택과 행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통사고가 두려워 보험을 들고, 큰 차를 사고, 혹은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두려움에 등 떠밀려서 내린 선택과 행동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더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3. 사랑의 힘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두려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올지라도, 그것이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나를 지배하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랑이 두려움을 이긴다고 합니다. 참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그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합니다 (요한1서4:18). 인생의 위기와 난관을 사랑으로 이겨낸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접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난치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침내 그 건강을 회복한 부모의 사랑,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문인으로서의 명성과 사회적 신분, 경제력을 과감히 포기한 사람,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에 자신의 잘못을 공적으로 시인하는 사람 등… 어떤 대상을, 그것이 사람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간에, 열정적으로 사랑하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만큼, 뒤돌아서 생각해 봐도 후회 남지 않을만큼, 누군가를, 혹은 어떤 일을 사랑해 본 적이 우리에겐 얼마나 있을까요?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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