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추석이 열흘 남짓 후로 다가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도 처서가 지나자마자 언제 그랬냐 싶게 선선해졌다. 새삼 계절의 질서에 경외감마저 드는 아침, 아내와 나는 산책길을 나선다.
아침 산책을 다닐 때마다 저절로 발길이 머무는 집이 있다. 오래된 대추나무가 담장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그 아래는 으례 잘 여문 대추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는 집이다. 그 낯익은 풍경은 나도 모르게 고향집을 불러와 내 발길을 오래 붙들곤 한다. 고향집 장독대 옆에도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해마다 추석이면 가지가 늘어지도록 대추를 한가득 달고서 도회의 회색 빛 삶에 지친 내 마음을 붉게 물들여주곤 했다. 그중 실하고 빛깔 좋은 놈으로 골라따서 옷소매에 쓱쓱 문지르고 아삭 베어물면 약간 설익은 듯 풋내를 살짝 벗은 듯 달고 상큼한 초가을이 한입 가득 고이곤 했었는데.
하루는 그 집 주인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왜 매일 같이 자기 집 앞을 서성거리냐며 수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고향 옛집이 그리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노라고 신경쓰이게 했다면 죄송하다고 했더니 나의 답이 자못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구레나룻이 보기 좋게 풍성한 미국인 주인장은 대추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주워가도 좋고 아예 대추나무를 털어가도 좋다는 것이다. 얼마나 옹골지던지 아내와 나는 정신없이 대추들을 아니 옛집을 담아오기에 바빴다.
집에 돌아와 창고에서 돗자리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마른 걸레질을 하고 볕 좋은 자리를 고르느라 부산을 떨고는 그 대추들을 고루 펴서 말렸다. 대추들은 햇살을 흠뻑 받아들여 전신에 차츰 붉은 빛을 더하다가 마침내 몸에 고랑을 이루었다. 쪼글쪼글 한껏 물기를 짜서 힘 닿는 한 최상의 단맛을 온몸에 실으려는 것이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조차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다해내는 그 숭고함이라니. 숙연해지는 생각의 꼬리 끝에 문득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태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실로 사십 여년 만의 해후였다. 시 서가를 찬찬히 더듬고 있는 그의 눈길이 편안해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그의 귓볼 아래 새겨진 대추알만한 붉은 반점을 본 순간 그라는 확신이 들었다. 순간 그와 내가 문학을 꿈꾸며 숱하게 잠 못 이루던 불면의 밤들이 한꺼번에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났다. 대학에서 새내기로 처음 만난 우리는 죽이 잘 맞는 풋내기 문학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던 그를 교정에서 다시 볼 순 없었다. 내 마음에 늘 얼룩진 상처로 남아있던 그가 안정돼 보여 정말 다행이었다. 폭풍우가 훑고 지나간 후의 고요함이 가을 대추에 들어있듯 지난 시련을 다 이겨낸 듯 그는 잘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청진동 뒷골목에 막걸리 사발을 놓고 마주 앉았다. 속을 후벼파며 아려오는 사십 년 그의 세월이 훌쩍 담을 넘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꿰어져 나왔다. 세차장, 편의점, 호텔 주차요원, 음식점 주방 일에서 공사장 인부 노릇까지 안 해본 것 없이 해보았다는 그. 지금도 크게 부를 이룬 건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생을 누릴 줄 아는 진정한 부자가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한 많은 세월을 비탈진 곳에서 살아낸 그였으니 ‘인생에 대한 섭섭함’ ‘사람들에 대한 증오’만이 그의 생에 남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참으로 그의 모진 생이 고맙다고 했다. 먼 곳을 떠돌게 했던 광풍, 어두운 뒷골목을 뒤지게 했던 쓰레기 같은 시간들이 자신을 삭혀 결국 그것들이 거름이 되어 자신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비록 가시 많은 생이지만 단맛을 품을 줄 아는 대추처럼 내 벗은 그렇게 둥글게 잘 영글어 있었다. 생에 대한 긍정적인 그의 시선이 말라 비틀어진 대추 씨앗 속의 숨을 틔울 줄 아는 가을 햇살이었을 것이다. 비록 늦은 나이지만 이제라도 시인이 돼보겠다며 멋적게 웃는 그. 그는 이미 생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그래. 저 한 알의 대추라도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대추 한 알로 문을 여는 이 가을. 나의 나머지 삶도 대추처럼 때론 천둥을 견디며 때론 무서리를 맞으며 붉고 둥글게 잘 여물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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