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임의 책 사랑 이야기 | 세계가 놀란 우리 옛 그림


이사를 다니다 줄이고 줄인 나의 서가에는 아직도 내가 몹시 아끼고 틈틈이 꺼내보는 귀한 책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그 중 <세계가 놀란 우리 옛 그림>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고미술 수집가이신 안덕환 선생님의 저서로 칼라 화보로 된 개인 소장품 민화 모음 책이다. 
저자의 사진 기술이 완벽해 작품마다 생명력이 넘치고 짧고 해박한 해설과 더불어 그림이 살아 요람에서 툭 튀어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준다.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담아 책으로 펴낸 저자의 뜻깊은 나라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하버드대학 도서관 한국학 연구 자료로 보관되어있다. 
우리는 무심히 내 앞에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쉼표 하나를 멋지게 찍으며 하루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가끔 나의 쉼표는 “여유롭고 익살스러운 우리 것”이라는 명제가 선명한 민화에서 잠시나마 넋을 빼앗겨 본다.
책을 펼치면 “까치와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도무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호기심 많은 까치 한 마리가 잠자는 호랑이를 깨웠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화가의 재치가 넘친다. 길상짐승인 이들이 서로 공생 공존하는, 권력 앞에 삿대질하는 힘없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새 나비 꽃 모두가 원색으로 유치찬란하다, 혹여 저승 길목에 죽은 자를 위해 피어있는 꽃이라면 모를까? 
화공이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색채의 현란함이 주는 주술적 민화들이 초현실주의의 화풍 같기도 하여 미소가 절로 나온다. 현대 화법으로 본다며 “이거야 원!” 할지도 모른다. 도식에 얽매이지 않은 화공들의 자유 분망함이 좋다. 
용과 호랑이, 하늘과 땅의 대결구도는 문인화의 정통 기법으로 시도한다면 호랑이는 대나무와 난으로 상징되고 용은 구름과 학으로 상징하는 기지로 격조 높은 해학성을 구사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선비의 방 북향에 놓인 8폭 평풍 그림엔 꽃과 새들이 노니는 구도가 평화롭다. 연꽃 모란 소나무, 학, 새, 물고기, 매화, 칠면조, 사슴, 공작, 특히 호랑이는 익살스러워 나를 목마라도 태워줄 심산이다.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모란이나 연꽃은 청초함보다 푸짐하고 화사한 다산의 의미를 더해주듯 요란하다. 대체적으로 샤머니즘적 강렬한 색상은 화공을 천시여긴 사회적 상황에서 그들의 끼를 강렬한 색채로 발산하는 순환작업으로 그들의 숨결과 존재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조금 색다른 민화들 책거리, 은은하고 낡은 색상(세월에 낡아진 듯)의 문방사우와 어울려 고요하고 단정하다. 산신과 무녀, 무속 신앙의 대표적인 민화들 산신령을 비롯하여 삼신, 칠성, 오방신장도, 천신대감 최영 장군, 각종 신장들의 모습은 섬뜩함과 찬 냉기를 느끼게 하지만 그 또한 채색이 화려하고 아롱진 최대한의 주술을 불러온 무속신앙의 위엄을 보여준다. 
선조들이 믿고 섬긴 대상이며 장수와 복을 빌며 잡귀도 막을 수 있다는 상징적 민화들이다. 무속 신앙의 용맹과 남성우위의 근본사상이 드러나고 용장들의 화려한 의상과 기백이 생명력이 넘친다. 
기독교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이 모든 민화들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현상은 옳지 안다고 본다. 민화란 한 나라의 평민들의 삶이 녹아 이어온 흔적들이다. 기독교나 타 종교가 이입되기 전에 인간 본래의 신앙과 자연에 맞서지 않고 함께 살아온 지혜의 소산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문화와 예술이 종교적으로 분리되어야 민족적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민화라 해서 모든 그림이 정통화법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 중 “소상팔경도”라든지 산수, 수묵화들 몇 점은 국립박물관 소장에도 흠잡을 곳이 없는 단아하고 고품격의 민화들도 돋보인다. 
민화란 한마디로 격식 없는 그림이다.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평상심을 자극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며 시름과 걱정을 잊게 하고 익살과 흥미로 민화를 보는 이로 하여 쉬어가게 한다. 
김철순 미술 연구가가 쓴 <민화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쉽고 간단해서 좋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솔직해서 좋다. 꿈이 있어 좋다. 따뜻해서 좋다. 조용해서 좋다. 자기주장이 없다. 허세와 가식이 없어 좋다. 익살이 있어 좋다. 신바람이 있어 좋다. 깨달음이 있어 좋다”고 했다.
이렇듯 한국인은 원래 민화에서 보며 낙천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서구화와 현대 물질문명이 바꾸어 놓았지 않나 생각한다. 
민화는 기법이나 화법에 매이지 않고 자유스럽다. 지식은 없으나 무아지경에서 그린 즉흥과 재주가 어울린 그림이 민화다. 
한마디로 우리의 옛 그림은 풍자와 해학의 극치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창과 창의성이 발휘된 예술이고 미를 그 속에 담아낸 작품이라 하겠다, 
옛 문화를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고 우리 이민자들은 더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이 지면을 통하여 우리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상상의 옛 과거 여행으로 들어가 민화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고 느릿함으로 빠른 일상의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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