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l ‘사람’의 죽음

사람이 죽었습니다. 일부 백인 경관의 손에 흑인 시민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고, 또한 그에 대한 방향 잃은 분노가 무고한 백인 경관들의 희생을 불렀습니다. 한낱 피부색이나 입장 차이로 ‘분류’되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 즉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남편, 형제, 친구가 또는 사랑받던 소중한 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번 경우는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인 것 같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흑인들의 경우 불법이건 합법이든지 간에 모두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패닉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백인 경관들의 손에 과잉 진압을 당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두 사건 모두 당시의 상황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특히 미내아폴리스에서 발생한 사건은 사건 당시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 친구에 의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라이브 영상이 공개되어, 한 무고한 시민의 죽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 미국에 방송되었습니다. 이어진 달라스에서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라는 평화로운 피켓 시위에서, 일부 흑인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백인 경찰들이 저격되어 사망하였고, 일부는 중태에 빠져 있습니다. 우발적인 살해가 아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이 범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에서의 흑백 갈등이 이제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 왜 또 하필 달라스란 말인가.” 혹은 “괜한 불똥 튀어 오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달라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아픔의 깊이가 너무나도 깊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민자인 우리들도 인종 차별 문제에서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한인 사회에서 특정 인종들을 경멸하거나 비하하는 표현들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종종 그 범위는 아주 다양하고 노골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인종적 편견, 경멸이나 비하 중에서도 유독 흑인에 대한 경멸이나 비하는 나름의 색깔을 띄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 주로 흑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며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생긴 편견과 반감이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또한 언어도 안 되고 신분상의 어려움을 가지고도 천성적인 근면과 뛰어난 교육열로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체류 신분상의 문제도 없고, 언어의 문제도 없으면서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흑인들을 향해 너무나도 쉽게 경멸과 비난을 던지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하기 전, 우리는 그들의 멍에와 아픔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극도로 인종화된 사회 속에서, 역사적으로 몇 세대에 걸쳐 공유 자원을 골고루 누리지 못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구별된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그들. 어쩌면 그들 깊은 곳에 있는 오래 된 상처는 유별난 교육열과 근면을 면류관처럼 쓰고 다니는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깊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샌프란시코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낯선 장소에 처음 방문했는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를 얻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얻지 못하다가, 며칠 후 다시 달라스 공항에 내려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슶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동양인이 자리잡고 살아간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고 동양인 인구가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인 아줌마 슬초맘에게 주어지는 시선은 그저 평범한 시선이었습니다. 한국어 악센트가 있는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해도, 무시하는 시선과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알게 되었지요. 편견의 피해자요,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구나.. 라구요. 이민자인 저도 그렇게 느끼는데, 같은 땅에 태어나 구별되어 살아가야 했던 그들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남아 있을까요.
사람이 죽었습니다. 흑인이 죽은 것도, 백인이 죽은 것도 아닌 사람이, 우리의 무지와 편견으로, 그리고 방향 잃은 분노로 인해 희생되었습니다. 어느 오락 프로그램의 구호처럼 “나만 아니면 돼!” 를 외칠 것이 아니라, 혹시 내 손에도 그들의 희생에 가담한 피가 묻어 있지는 않은지.. 가슴 아픈 점검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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