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말하라면 의, 식, 주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를 두고 그 경중을 따질 수는 없지만 굳이 순서를 매겨 본다면 먹는 것을 가장 앞쪽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는 놈 없다’는 속담은 굶주림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도 굶주림 앞에서는 범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도 그 밑에는 인간의 먹기 위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먹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었지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먹는 것을 중시한 듯하다. 각 때마다 밥 먹었느냐는 말이 인사말이 될 정도이고,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말은 비아냥거리는 말도 되지만, 잘 먹는 것이 바로 잘 사는 것이라는 의식이 그대로 투영된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식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은 별로 남겨 둔 것이 없다. 먹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인 것은 인정했지만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선조들의 식습관을 알아보려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퍼즐 맞추듯 모아보는 수밖에 없다.
식사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면서 끼니 수를 줄일 수는 없을까, 심지어는 먹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망상도 해 보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먹는 재미를 빼 버리면 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하느라 바빠서 혹은 다이어트를 하느라 하루 한두 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하루 세 끼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민족에게 하루 세 끼 식사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기록을 보면 우리의 선조들은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123년 고려 예종이 돌아가자 조문단으로 왔던 송 나라의 서긍이 고려의 생활상을 보고 기록한 『고려도경』에 고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18세기 후반 이덕무가 기록한 『청장관전서』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5홉을 먹으니 하루에 한 되를 먹는다고 하였다. 식사를 ‘조석(朝夕)’이라 불렀던 것도 이처럼 아침과 저녁으로 먹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다.
그러면 점심을 안 먹었다는 말일까. 점심이란 말은 이미 조선 초기에 등장하고 있다. 태종 때 대사헌을 지낸 한상경은 한양 5부학당의 교수, 훈도들이 하루 종일 가르치는데 점심도 없으니 지방의 향교만도 대우가 못하다고 지적한 기록이 있다. 점심은 이처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간식 정도의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래 점심이란 중국의 스님들이 새벽이나 저녁 공양 전에 말 그대로 ‘뱃 속에 점’을 찍을 정도로 간단하게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간식을 ‘디엔신〔點心〕’으로 부르고 있고, 우리의 점심 식사에 해당하는 말은 ‘우판〔午飯〕’이라 구별하여 부르고 있다. 또 오희문이 임진왜란 중에 쓴 『쇄미록』이라는 일기에도 간단히 먹은 경우에는 ‘점심’이라 쓰고, 푸짐하게 먹은 경우에는 ‘낮밥〔晝飯〕’이라 써서 둘을 구분하고 있다. 궁중에서도 아침 저녁에는 ‘수라’를 올리고 낮에는 간단하게 국수나 다과로 ‘낮것’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점심이라는 말은 낮에 간단히 먹는 간식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이것이 간식 정도의 식사를 의미하는 단계를 거쳐 정식 식사를 의미하는 말로 발전해 온 것이다.
하루에 챙기는 끼니 수는 계절에 따라서도 달랐다. 19세기 중엽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대개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 동안은 하루에 세 끼를 먹고,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5개월 동안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하였다. 즉, 해가 긴 여름에는 간단한 점심을 포함하여 세 끼를 먹고, 해가 짧은 겨울에는 두 끼를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겨울에 두 끼만 먹었던 것은 일조 시간이 짧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주로 농사일을 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절 뿐 아니라 노동량에 따라서도 하루에 먹는 끼니 수가 달라졌다. 농촌에서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는 새참까지 합하여 하루 다섯 끼도 먹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세 끼 식사가 정착되기 전에도 여행객들은 활동량이 많으므로 낮에도 주막에서 중화(中火)로 허기를 채웠고, 왕도 궐 밖으로 멀리 거동할 때에는 간단한 ‘낮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차려진 ‘낮수라’ 들었다.
또 빈민들은 살림 형편에 따라 하루 두 끼에 만족해야 했고, 부유한 사람들은 하루 세 끼, 또는 그 이상을 먹었다는 기록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1905년 러시아 대장성에서 발간한 『한국지』에는 한국인은 하루에 서너 번 밥을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침 식사 전에 간단히 먹는 ‘조반(早飯)’을 한 끼 식사로 포함시킨 것인데 여기에 밤참까지 합하면 하루 다섯 끼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식습관이라기보다는 특수한 몇몇 경우에 국한된 것이었고 일반적으로는 하루 두 끼가 보편적인 식생활이었다. 1916년 일본군 군의관들이 한국 북부 지방의 생활을 조사한 기록인 『조선의 의식주』에서도 한국인의 식사 회수는 지방에 따라, 계절에 따라, 경제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하루 2회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루 세 끼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이르는 말이다. 이 중 아침과 저녁은 순우리말로 때와 끼니를 동시에 일컫는 말로 쓰이지만 점심은 간단한 간식을 일컫던 중국어에서 온 말로서 오직 끼니를 일컫는 말로만 쓰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식생활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관리형 홈스테이 기숙학사
elimedu@gmail.com|972-998-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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