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잡지사의 편집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잡지사로 날아드는 원고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설이나 시 원고를 보내기 때문이었다.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를 다 읽으려면 하루에 책 두 권을 읽는 정도의 속도로 읽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원고를 꾸준히 보내는 한 여자가 있었다. 사실 그 여자의 글은 그리 재미있지도 않았고 유익하지도 않았다. 편집장은 그 여자의 원고를 계속해서 돌려보냈다.
어느 날 그 여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 사기꾼, 당신은 그 잡지의 편집장 자격이 없어요. 남의 원고를 다 읽어 보지도 않고 돌려보내다니. 난 당신이 행여 내 원고를 끝까지 읽지 않을까봐 원고 18, 19쪽을 풀로 살짝 붙여 놓았단 말이예요. 되돌아 온 원고를 보니까 붙여진 부분이 그대로 있으니 안 읽은 게 분명하잖아요.”
분노에 가득 찬 편지를 받고 편집장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삶은 달걀을 먹을 때 한 입 먹어 보아 만일 상했다면 끝까지 먹지 않습니다.”
서점에는 홍수가 난 것처럼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많은 책들을 우리는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읽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고 윤기나게 해주는 책은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책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책인지, 어떤 책이 오히려 우리의 심성을 망가뜨리는 책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는 그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선별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책들을 선별해서 청소년 필독서라는 이름으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람들 주변에 특히 청소년 주변에 이런 좋은 책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책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점에 들렀었다. 월급날 퇴근길에는 꼭 서점에 들러서 이런 저런 책들을 만져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 한두 권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떤 책들은 조금 보다가 그저 책장에 꽂아 두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한 번 씩 꺼내보는 재미가 있고 서가에 책들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 서점에 가는 일도 거의 없어졌고 책장을 넘기기보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보 획득의 스피드에서 뒤지게 되고 자연히 그룹의 대화에서 소외되기 쉽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분명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인터넷 사이트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제한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은 구입하기 위해서 발품도 팔아야 하고 값도 지불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무 책이나 손에 넣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때와 장소에 제한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쉽게 들어가서 마음대로 헤엄쳐 다닐 수 있는 넓은 바다와 같다. 게다가 돈벌이가 되는 것이면 아무 일이나 서슴없이 저지르는 지각없는 어른들의 상업적 욕심 때문에 저질 사이트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한 입 먹어 보고 썩은 달걀이면 먹지 말아야 한다. 이미 베어 물었더라도 뱉어야 한다. 그러나 썩은 달걀을 달콤한 설탕으로 감싸서 썩은 줄 모르고 자꾸만 먹게 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이다. 썩은 줄도 모르고 계속 먹다 보면 배탈이 나게 되고 때로는 큰 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정보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청소년의 컴퓨터 이용시간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독서량은 상대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가 책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컴퓨터를 필요한 정보를 얻는 보조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컴퓨터를 비정보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즉, 오늘날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얻기보다는 게임이나 채팅 등 여가 활용의 수단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정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정보와 지식을 멀리하게 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낳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공간의 확대는 유익한 정보의 교환과 건전한 인간관계의 형성을 통해 개인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기도 하지만, 독서를 통한 인문사회과학적 풍토와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기술만 발달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정보화 사회는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전자책도 있고 전자 도서관도 있어서 인터넷을 통한 책읽기도 가능하지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방지할 묘안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똑 같이 썩은 달걀로 독자를 유혹하더라도 종이책보다는 인터넷이 더 매력적이다. 종이책보다는 인터넷에 더 친숙해져버린 이 시대의 청년들이 안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썩은 달걀은 먹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겉으로 보아서 썩은 달걀을 구분하지 못했더라도 썩었으면 먹다가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에게 컴퓨터만 안겨 주고 책을 읽히지 않는다면 썩은 달걀을 썩은 줄도 모르고 계속 먹게 해 마침내 자녀들의 영혼과 미래를 그릇된 정보사회에 팔아넘기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