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거듭난 사람은 계속적으로 거듭나는 법입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법을 가장 잘 가르쳐 주실 분은 “주님”으로 영접한 예수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나와 함께 하는 분이시니 언제든 어디서든 가르치실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가 신앙을 지도했던 방식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가르쳤다기 보다는 예수님이 “주”가 되었을 때 하면 안되는 것들(우상숭배, 술, 담배, 음행 등) 과 해야 될 것들(주일성수, 헌금생활, 전도 등)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위 위주의 신앙생활이 교회 안에 잘못 정착되어 본질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나 역시도 그와 같은 가르침의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기에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 보다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에 더 익숙하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요즘 하나님의 주되심에 관련하여 또 한번의 거듭남을 지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내게 경험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되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게 아니라 믿어지고, 참는게 아니라 참아지고, 이해가 되고, 다스려지고, 사랑하게 되는 소소한 경험들입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다스려지는 느낌, 누군가가 공급해 주는 힘으로 사는 느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이끄심에 의해서 사는 느낌이요. 그게 뭘까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기 시작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주인이 주님이시니 주님 뜻대로 이끌어 달라고 자꾸 두 손 들고 항복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완벽하게는 못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님 닮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하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생긴일인 것 같기도 하구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되심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할 때 신앙생활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볼 때 나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온 셈입니다. 이제서야 되어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을 보면요.
주되심이 인정되면 수동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셔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그 때부터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인 사람이 되죠. 왜냐하면 주님이 하라고 허락하신 일에는 오직 순종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호수아를 본문으로 말씀묵상을 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여호수아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수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런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수3:7)
주되심이 분명히 드러난 말씀입니다. 내가 널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할 것이고 그들이 알게 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것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이 약속만큼 여호수아에게 힘이 될 만한 다른 무슨 말이 더 있었을까요? 그거면 충했다고 믿습니다. 여호수아의 평생에 일어난 모든 위대한 일들은 함께하셨던 주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한 일이 있다면 여호와의 함께하심을 믿고 순종했을 뿐입니다.
감사하게도 이 약속의 말씀이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에 기록이 되어있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수아에게 충분했던 한 마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애쓸 필요없이 주되심 앞에 내가 할 일은 여호수아처럼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요, 또한 “내가 할 일”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이 하실 것 입니다.Joy!
염경희 사모
달라스 주님의 교회
‘하나님과 동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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