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봉의 한국 문화 산책: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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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덕왕 때 승려 충담(忠談)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향가 ‘안민가’의 배경설화가 『삼국유사』 권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에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경덕왕 24년 3월 3일, 왕이 귀정문 위에 나와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길에서 영복승(榮服僧) 한 분을 데려 올 수 있겠는가? 그 때 마침 위의가 깨끗한 대덕(大德)이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신하들이 보고는 데려 와서 왕에게 접견시켰다. 왕은 그 승려를 보고서는 원하는 영승이 아니니 물러가게 한다. 다시 한 스님이 있어 지나가는데 남루한 옷을 입고 앵두나무로 만든 통을 둘러메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었다. 왕은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그를 문루 위로 영접해 이름을 물으니 충담이라 했다. 그가 둘러멘 통 속에는 다른 것은 없고 차를 끓이기에 필요한 기구들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차 한 잔을 청하자 곧바로 차를 끓여 바쳤는데 차 맛이 범상하지 않았고 그릇 속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일찍이 그가 화랑 기파랑을 찬미하는 사뇌가(향가)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 뜻이 매우 깊다고 널리 알려져 있던 터라, 왕이 다시 그에게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노래를 지어줄 것을 청하자 지어 바친 것이 바로 ‘안민가(安民歌)’이다. 왕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그를 왕사로 봉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안민가는 향찰로 기록되어 있어서 학자에 따라 해독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임금을 아버지에, 신하를 어머니에, 백성을 아이에 비유하고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할 것이라는 전체적인 내용에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임금과 신하, 그리고 그 중간에 서 있는 승려가 같은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영복승’을 두고 임금과 신하가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고, 왕은 충담사에게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를 지어달라고 했으나 충담사는 백성을 편하게 하는 노래로 바꾸어서 지어 바쳤다. 즉, 영복승은 화려한 옷을 입은 승려와 영화로운 일을 해 줄 승려라는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신하들은 그 말을 전자로 이해했고, 왕은 후자의 의미로 생각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왕은 왕의 입장에서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이안민가, 理安民歌〕를 지어달라고 충담에게 요청하나, 충담은 ‘이안민가’를 짓지 않고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경덕왕 대는 신라의 기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반란이 자주 일어나 정치적으로 어지럽던 시기에 이러한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치세의 지혜를 구하는 왕에게 충담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다 각기 자기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교훈적인 권고의 노래를 지어 바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구의 해석을 달리하면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상호간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임금이 선정을 베풀지 못하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백성이 나라를 떠나려 하고 나라가 태평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지금까지 해 온 방식이 아닌 그 반대의 다른 정치를 할 것을 권고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물을 보고 이해하려는 속성이 있다. 신하들은 왕이 원하는 것을 신하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왕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의도로 위엄이 넘치고 지혜와 명망이 높은 고승을 데리고 왔고, 충담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정중하게 자신의 뜻을 왕에게 고하고 있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라는 구절은 공자가 제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제 나라의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대답한 말을 충담사가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임금에게 국한된 정치적 권유로만 치부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에게는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각자에게 부여된 소임이 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가정의 부모된 자들은 또 아이들의 부모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할 때 이 사회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책임과 소임은 잊어버리고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치가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고,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갖은 학대를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부모들의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자식들을 양육할 줄도 모르고 양육할 능력도 없는 철부지 젊은 부부가 아이를 학대하고 굶주리게 하다가 죽음으로 내 몬 소식들을 접하면서 안민가를 지어 바쳤던 충담사의 간절함과 위기의식이 오늘날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는 통치자 한 사람의 선정만으로, 혹은 몇몇 정치가의 헌신만으로 유토피아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안정과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 위치에서 나답게 처신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관리형 홈스테이 기숙학사
elimedu@gmail.com|972-998-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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