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텍사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여름이 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름 3개월간은 계속해서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나들고 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던 때가 자주 있었다고 하는데 필자처럼 최근에 텍사스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작년과 올해의 예년 같지 않은 많은 비와 서늘한(?)날씨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나들고 날씨가 후덥지근한 여름에는 평소에 얌전하신 고객분들도 대출을 신청하실 때 다소 신경이 예민해지곤 한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와 작성해야 하는 양식, 물어보는 질문들이 왜 그리도 많은 지, 은행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대출이 된다, 안 된다를 판단하는 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은행업은 한 나라의 규제산업이고 리스크를 매니지먼트해야 하는 업종의 특성상 자산의 증가를 도모하기 보다는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러한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실패했을 경우 역사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대출리스크(신용리스크)점검에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신용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한국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의 금융업을 쥐락펴락하던 빅 5은행을 ‘조, 상, 제, 한, 서’라고 한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등 광복 이전에 설립된 5개 은행의 설립연도 순대로 나열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조상제한서’는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에서 수 많은 기업들의 돈을 주무르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한보사태를 시작으로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기업에 많은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연쇄 도산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신용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채 대마불사에 의존하여 돈을 빌려준 결과라 할 수 있다.
가까운 미국의 사례도 한번 살펴보자.
처음에 서브프라임 대출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을 때, 은행들은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을 “Stated Income, Verified Assets”으로 완화했다가 “Stated Income, Stated Assets”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바뀐 내용에 따르면 고객은 자신의 재산과 소득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빚을 갚을 만한 충분한 수입이 있다고 서류에 기재하기만 하면 되었고, 은행은 재산 및 소득을 조사하지 않고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과 신흥국가들의 자금들마저 홈모기지에서 파생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더욱 많은 모기지가 필요했다. 더욱 많은 모기지가 필요해지자 은행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마침내 “No Income, No Assets” 대출이 시장에 나왔다. 이 대출상품은 고객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신청만 하면 재산이 없어도, 소득이 없어도 은행은 대출을 해주었다. 당시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었고 은행들도 계속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택시장에 붐이 일어서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에게 현재 집 값의 100%까지 돈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집 값은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대출금액 보다는 담보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판단하여 은행들은 미친듯이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얼마나 대출심사를 대충했는지 보여주는 일화 중에 기절초풍할 게 하나 있다. 한창 “No Income, No Assets” 대출이 성행할 때, 오하이오에서는 23명의 죽은 사람이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 살아 있는 사람이 그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인데 은행은 고객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도 안한 것이다. 결국 세계적인 은행들의 도산과 함께 400여개가 넘는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기 사례로 볼 때 자산성장만을 추구하고 리스크 관리를 뒷전으로 했을 때 은행과 정부(나아가서는 국민)이 입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이젠 정부 금융당국이 은행의 대출자산 감사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이런 지침은 은행의 대출 관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과거 10년전보다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까다로워졌다.
그렇다고 불평만 하기 보다는 정부금융당국과 은행의 대출심사부서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대출심사를 하는지를 알아보고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해 두면 당황스런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객이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은 5C를 기준으로 서류 요청과 질문 등을 하는데 5C란 Capacity, Capital, Collateral, Conditions, Character 등을 말한다. Capacity는 대출 상환 재원인 Primary 현금흐름(Cash Flow)을 분석하는 것이고 Capital은 자기자금을 얼마나 투자하느냐로 종종Down Payment, LTV(Loan to Value), 부채비율(Debt to equity Ratio)등으로 분석된다. Collateral은 담보와 보증인에 대한 내용으로Capacity(Primary현금흐름)이 망가졌을 때 기댈 수 있는 Plan B를, Conditions는 고객이 영위하는 사업의 환경 및 Industry의 흐름을, Character는 Owner와 Management의 경영능력 및 대출을 상환하고자 하는 의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5C에대한 개괄적인 내용만 짚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상세히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이러한 5C의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분이 론오피서(혹은 Lender)를 상대로 대출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때 조건협상에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고창오 부행장은 신한은행 기업 여신심사 팀장, 신한은행 아메리카 심사본부장을 역임, 현재는 한미은행 달라스 론센터 부행장으로 재직 중인 기업대출 분야 전문가다. 문의: 201-98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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