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l 입양

15년 전 바로 이 맘 때입니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꼬박 꼬박 복용하고 있던 페루에서 계획에 없이 슬초를 갖게 되었을 때, 현지의 산부인과 의사는 두꺼운 책을 꺼내 뒤적거려보더니 이 약은 임산부에게는 복용이 금지되어 있고 임신 초기에 복용할 경우 태아의 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리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1 센티미터도 안 되던 슬초의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나서는 어떠한 결과라도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 때의 그 결심으로 임신 기간 동안 기형아 검사나 성별 검사 등을 모두 거부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입양을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우리가 낳지 않은 다른 어린 영혼들을 섬기고 키우겠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9개월 후, 유독 크고 검고 예쁜 두 눈의 슬초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7년 뒤, 슬초네 가족이 경제적으로 가장 넉넉하였을 그 시점에, 한국에서 한 아이의 입양을 시도했습니다. 실제 그 일로 인해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었고, 이사도 했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입양일이 다가오며 아이의 친모께서 아이와 정이 들어, 본인이 자식을 다시 키우기로 마음을 바꾸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이로서는 친엄마와 살게 되어 너무나 잘 된 일이었지만, 막상 모든 것을 준비했었던 저희로서는 약간 서운하기도 한 순간이었구요. 하지만 그러한 서운함도 잠시, 슬초빠가 갑자기 혈액암 진단을 받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지요. 만약 새로 입양한 아이가 그 과정을 함께 겪었어야 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래서 비록 입양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을 서로에게 선으로 작용한 하나님의 지혜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슬초네는 그 후로 입양에 대한 계획을 포기하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아이들과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자식도 하나 외에는 키울 자신이 없어진 ‘비 육아형 인간’ 슬초맘에게 그 후 도움이 필요한 어린 영혼들을 섬기게 되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말이죠. 어빙 수학 공부방에서도 찾아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그들의 필요를 섬기는 행정을 하게 되었고, 현재의 난민촌 공부방에서도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그 어린 영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부터는 인도 미전도 종족 지역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세 곳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고아가 발생하면 남자 아이들의 경우 노동력으로 매매되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 사창가로 팔려가는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오게 된 아이들의 경우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 학교도 다닐 수 있어서, 오히려 운이 좋은 아이들로 여겨진다고 할 정도라고 하네요.
그 중 특별히 한 고아원의 27명의 아동들에 대해서 아동 한 명 당 교회의 한 가정을 영적 부모로 결연하여 월 일정 금액과 중보 기도의 후원을 보내는 사역의 행정을 지원해 왔습니다. 이 사역은 영적 가족의 개념을 도입하여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서로 사진과 소식을 주고 받으며 기도하며 후원하는 사역인데, 슬초네 역시도 한 여자아이를 후원해 왔고 작년에는 슬초빠가 직접 인도를 방문하여 그 아동을 만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저와 슬초도 곧 인도를 방문하여 그 아동을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에 기도를 많이 해 왔다는 이야기와, 엄마와 언니도 곧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뻐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 왔습니다. 슬초네 가족은 앞으로 이 아이가 현지에서 대학 공부를 마칠 때까지 후원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최근에는 다른 한 고아원에 이 후원 결연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이 되어,  38명의 새로운 버려진 어린 천사들에 대한 사진과 정보가 도착했고, 요즘 슬초맘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기쁜 비명입니다.
투병과 회복 이후 삶의 방향을 바꾸며, 그간 손에 움켜쥐고 있던 많은 계획들을 포기했고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니, 많은 것들을 내 방식으로 움켜쥐고 있던 그 때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제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그 방식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방식은 아니었지만 말이지요. 입양. 한 아이를 나의 가족으로 키우려 했던 나의 인간적인 계획과 시도는 실패하였지만, 이제는 똑같이 소중한 한 영혼을, 아니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수의 어리고 약한 영혼들을 가슴으로 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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