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l 무당 공주 뮬란

선발 합창팀과 아카펠라팀으로 활동하며 중학교 시절을 신나게 보낸 슬초. 얼마 전 곧 합창부의 졸업 콘서트가 있으니 의상을 사야 한다고 합니다. 콘서트 의상은 보통 학교에서 대여업체를 통해 해결하기 때문에 의아해서 물어보았더니, 이번 콘서트는 디즈니 캐릭터들을 주제로 하는 콘서트라서 저작권 문제로 대여가 되지 않으니 각자 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네 캐릭터는 뭐니..? 했더니, 아주 자랑스럽고 당당한 얼굴로 “나는 뮬란이지!” 합니다. 뮬란… 중국 전설 중의 하나인 화목란(花木蘭, Hua Mulan)을 주인공으로 각색한 디즈니 만화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슬초맘은 약간 실망이 되었습니다. 먼저는 디즈니 만화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여성이나 동양인에 대한 시각 등이 예민한 슬초맘의 심기를 건드리곤 하기 때문인데, 특히 ‘포카혼타스’나 ‘뮬란’에서 보여지는 동양인 여성에 대한 시각은 영 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혹시라도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양인 캐릭터를 받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슬초의 씩씩하고 당당한 대답이 들려옵니다. “내가 뮬란할 거라고 몇 달 전부터 지원해 놓고 찜해 놓고 다녔는데 드디어 나한테 이 캐릭터가 왔어! 왜?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잖아!”
자, 이제 의상만 사면 됩니다. 그런데 뮬란이라는 캐릭터의 의상을 보니 이거 원.. 척 봐도 허접합니다. 뭐랄까요.. 울긋불긋한 선녀 옷 같달까요..? 그런데 이 허접한 선녀 옷의 가격이 허거거걱합니다. 배송비를 포함하여 대략 120불 정도. 한 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을 옷에 이런 비용을 들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슬초맘, 매의 눈으로 의상을 다시 한 번 훑어 봅니다. 너풀 너풀한 것이 만들기도 별로 안 어려워 보입니다. 내 비록 가사 시간에 아름다울 ‘가’를 받았던 흑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명색이 엄마인데 한 번 입고 버릴 저런 의상 하나 못 만들까 싶습니다. 마음을 먹은 슬초맘, 이거 너무 낭비 같으니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고 의상비에서 재료비를 뺀 나머지 금액은 네 용돈으로 주겠다며 슬초를 살살 구슬립니다. 순진하고 불쌍한 슬초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채 입을 헤 벌리고 좋아라하며 사악한 엄마의 딜을 받아들였습니다.
내친 김에 옷감 가게에 가서 중국 비단스러운 옷감들을 20불어치 사 왔습니다. 여기까진 쉬웠습니다. 그런데 그 너풀너풀한 선녀 옷도 막상 만드려고 하니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더군요. 게다가 손 바느질! 밤이면 밤마다 호롱불 아래에서 열심히 만들기를 며칠… 얼추 됐으려나 싶어서 슬초맘이 입고 거울 앞에 서 보았더니, 뜻밖에도 거울 속엔 ‘뮬란’이 아닌 왠 ‘무당’이 서 있습니다. 이건 영락없이‘무릎팍 도사’에서 강호동이 입고 나오던 그 박수 무당 옷입니다. 불쌍한 우리 슬초, 다른 아이들은 백설공주 옷, 신데렐라 옷 입고 나오는 콘서트에 엄마 잘못 만난 죄로 박수 무당 옷을 입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긴 소매라고 만들었는데 입어 보니 팔꿈치 아래까지 껑충 올라 온 7부 소매. 공연 하루 전, 급하게 긴 소매를 대충 다시 달아 슬초에게 입혀 보니, 이번엔 옷이 전반적으로 헐렁.. 하니 축 처지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니 40대 몸매의 슬초맘을 기준으로 옷을 만든 것입니다. 결국, 공연 당일 날 아침, 슬초를 세워 놓고 의상의 온 사방을 스테이플과 옷핀으로 고정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온 몸에 스테이플과 옷핀을 장착한 우리의 착한 슬초는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이라며 그 비단 무당옷을 입고 신나게 공연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 보는 슬초맘, ‘아, 난 저 순진한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싶어 등에 식은 땀이 흐릅니다.
대망의 공연장. 슬초맘의 우려와 달리, ‘미쿡’ 사람들은 슬초의 알록달록 킹왕짱 허접 스테이플 박수 무당 드레스를 뮬란 의상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온갖 비싼 의상들을 입고 온 수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성격 좋은 무당 공주 슬초는 이건 특별히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직접 만들어 준 의상이라며 으쓱으쓱하고 다닙니다. 순진한 아이들은 그저 부러워합니다. 독특한 컨셉의 의상을 입은 뮬란 공주는 어린이들에게도 나름 인기가 많아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었더랬습니다. 하늘이 도왔던 공연 후, 슬초는 약속대로 백 불을 용돈으로 받아 들고 행복하여졌고, 슬초맘은 자신의 만행에 대한 증거인멸 차원에서 받아 든 의상을 공연장 쓰레기통에 잘 감추어 두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번의 무당 공주 사태는 맞벌이와 병치레, 각종 사역에 바빠 엄마 노릇 한 번 제대로 못 해 주었던 슬초맘의 미안한 마음에서 나온 뒤늦은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결론은 언제나처럼 “남 쳐다보지 말고, 내가 잘하는 것으로나 아이에게 잘 해 주자!” 입니다. 괜히 다른 엄마들 부러워하다가 딸래미를 무당 공주로 만들었던 슬초맘, 이제 다시는 이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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