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 해가 밝았나 봅니다. 작심삼일의 대가 울 따님께서 뭔가를 열심히 작심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올해로 만 30세가 되신 울 따님께선 직업이 의사이시지만 의사가 되기까지 작심삼일의 결과로 의사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작심삼일의 대가이십니다. 작심삼일때문에 좌절하고 다시 작심하기를 120번 반복하면 일년이 채워진다는 진리 때문인지 아슬아슬 꿈을 이루신 울 따님은 자타불허 작심삼일의 대가답게 고민이 많은 듯 합니다. 고민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고민해 봅니다. 그녀가 계획하는 새해의 결심은 무엇일까...제발이지 올해 안으로 시집을 갔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런 계획은 세우나 안세우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노력으로 될일도 아닌 계획을 세워놓고 괜히 이루지 못했을때 좌절감만 생길테고 그렇다고 뒷짐지고 있기도 뭐하고...참으로 애매합니다. 점심 먹으러 나온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습니다. "따님, 올해의 새로운 결심은 무엇인지요" "옴마, 제가요 열심히 고민해 보았는뎁쇼. 올해는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는것이 저의 새해 결심임다. 결심하고 작심하고 또 결심하고 작심하고...그러지 않기로 했음다.어머니 어떻습니까! 제 계획이 지혜롭지 않습니까? 음하하하하... ..."
하이고 누구 딸 아니랄까봐 새해 결심까지 비스무리하게 닮아갑니다. 내가 세운 새해결심은 "안되면 말자"거든요. 목숨까지 바쳐서 이룰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 그냥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자..., 작심을 했더랬습니다. 그런 작심은 벡퍼센트 성공할 확률이 높아서 좌절 같은 것은 뉘집 이름인지도 모르고 살 수가 있으니 해 볼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작심삼일과 '굿바이' 하고 싶은 것이 나의 올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우이쒸' 울 따님께서 어떻게 알고 나랑 비슷한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올해로 만 육십이고 따님께선 꼬부라진 육십이어서 서로 비슷한 감정선을 갖게 된것일까? 아님 모전여전일까? 그것도 아님 이솝우화중 '신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라도 된단 말인가?
어느 날 여우가 길을 가다가 포도나무 가지 위에 있는 신 포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포도를 먹기 위해 열심히 폴짝 폴짝 뛰어 봅니다. 한 나절을 폴짝거려도 나뭇가지 위의 포도에 닿을 수 없자 여우는 '나는 신 포도를 좋아하지 않아' 하면서 뛰기를 포기 합니다. 생각의 전환을 통해 좌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자는거지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포도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받는 것 보다는 나름 좋은 해결책 같아 보입니다.
2016년, 나의 신 포도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제일 신 포도는 아이들 '결혼'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나지만 구순이신 아버님은 "우리 친구들은 고손주가 대학생인데 난 구십이 다되도록 고손주는 커녕 증손주조차 못 보셨다"며 증손주보기를 학수고대 하십니다만 손녀들 머리위엔 연기조차 나지 않고 있습니다. 울 따님은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난 신 포도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고 합리화를 해 보지만 할아버지껜 통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진 포도나무 밑에 하염없이 앉아 포도가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라도 기다려 볼 생각이시니 말입니다. 그런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나의 따님께선 생각을 달리하여야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간절한 마음에 내 마음을 살짝 올려서 은근히 부추겨 봅니다. " 따님, 할아버지께서 저리 간절하신데 높이, 더 높이 뛰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오마니 동무, 포도 나무가 보여야 뛰든지 말든지 하쥬, 만약 포도나무를 발견하면 내 사다리를 놓고라도 올라가뿔테니 걱정 마소서!"
마침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 아들 전화였습니다. 어스틴쪽으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온다는 전갈이었습니다. 3박4일정도 머무를 곳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내가 전화기를 내려 놓자마자 아버지께선 김칫국을 마시며 나와 딸에게 의미있는 눈 빛을 마구마구 발사하십니다. ㅎㅎㅎ 하지만 울 따님, 포도나무를 보면 사다리를 놓고서라도 올라갈꺼라 큰 소리 치던 따님은 어데로 갔는지..., 할아버지께서 멍석 깔 준비를 하시자 냅다 도망칠 궁리부터 하니 말입니다. 시집도 때가 되고 인연이 되면 가겄지, 마음을 접습니다.
아무계획도 세우지 않은 올해는 넉넉한 마음으로 한껏 여유로움을 느낍니다. 동동거리며 시간 가는 것을 아쉬워 했던 때와는 달리 높은 산 위에 올라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볼 때 처럼 마음이 가볍습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잡아타고 산책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아무계획도 세우지 않으므로 해서 작심삼일과 기꺼이 굿 바이 할 수 있는 나란 여자...여우가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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