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식 l 내 곁에 있는 사람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했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나이 쉰 살이 되서야 노총각 딱지를 뗀 함민복 시인의 "부부"라는 시 입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우리 부부가 결혼 준비를 하던 때가 생각 납니다. 특별한 정신 무장이 필요 할 것 같아 다니고 있던 교회 목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목사님께선 결혼 생활을 실패없이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성경속의 구절이나 명언같은 말씀은 다 잊어버렸는데 목사님께서 직접 겪으며 느끼셨던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것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이 지방 출장이 있어 시외버스를 탔는데 옆 좌석에 참한 아가씨가 앉아 있더랍니다. 그 아가씨가 짐 칸에 올려 놓은 가방에서 뭘 꺼내려다말고 힘에 부쳤는지 목사님을 쳐다보며 "죄송한데... ...," 라고 했는데 그 아가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사님께서 벌떡 일어나 짐을 내려주고 있더랍니다. 아가씨가 하고 싶었던 말은 "죄송합니다만 이 가방좀 내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였겠지요. 죄송한데....까지 밖에 안 듣고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줄 정확히 알고 도와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이만하면 연말 대상감이죠? 처음 본 타인에겐 이렇게 배려심을 넘어 오버까지 하시는 목사님께서 오히려 그 분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시는 사모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번은 긴 장마에 빨래 널을 곳이 부족한 사모님께서 벽에다 못을 하나 박아 달라고 며칠씩 노래를 했는데 못 들은척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 방 안에 빨래들이 너풀거리고 있어서 '누가 못을 박아주었나?' 생각하면서 빨랫줄을 쫓아 가보니 기다리다 지친 사모님께서 급한데로 농짝에다가 못을 쳐서 빨랫줄을 만들어 놓았더랍니다. '아이쿠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농에다가 못을 치는 여편네가 어디있노?' 말을 들어 주지 않은 죄가 있어 화를 내지도 못하고 멀쩡한 농에 못을 박아 만든 줄에 너풀 거리는 빨래를 쳐다보다가 나온 길이었다고 합니다. 며칠씩 반복되던 사모님의 부탁은 귀 너머로 들으며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선 생면부지의 사람에겐 부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움직이는 자기 모습을 보며 사모님께 많이 미안하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던진 메세지는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배려심이 있으면 결혼 생활을 실패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결혼 생활 하는 동안 그 이야기가 종종 떠올랐습니다. 그런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나 있는지 알 수 없는 남편은 결혼 생활 30년이 넘도록 아직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만 있겠습니까마는 대표적인 것 하나만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모든 주부가 공감하는 부분일 것 입니다. 밥 차려놓고 부를 때, 바로 나오지 않고 하던 일 마저 하고 나온다거나 밥 먹으란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바쁜 일이 생각나 서류를 뒤적인다거나 침대에 등짝을 본드로 부쳤는지 꼼짝도 안하고 누워 있을때면 대책이 없습니다. 30여년 동안 밥을 차려준 부인이며 세상에서 부인이 해준 밥을 제일 오래 얻어 먹어 온 사람으로서 내 곁에 있는 부인이라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달라는 부탁의 말이 왜 들리지 않는 걸까요? 부인의 노동력에 대해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절대 그럴 수 없는 일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분을 품을 때도 있지만 이 버릇이 30여년 동안 반복되자 저에게 신기한 기술이 하나 생겨버렸습니다. 남편이 말 하지 않아도 말이 들리는 기술 말입니다. 어느날은 밥 차려 놓고 남편을 부르면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진정으로 꼼짝 하기 싫다. 나 좀 내버려 두면 안돼나?' 

오늘 아침에도 일어 난 것을 확인한 후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했더랬습니다. 감기에 걸려 기침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 남편이 씻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있길래 밥 먹고 난 후에 씻을래나보다 하고 굽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기에서 육즙이 지글거리며 최상의 맛을 자랑할 때 쯤 접시에 옮겨 담으려고 하는 찰나 남편이 씼으러 들어 갑니다. '이런 된장~' 시간이 경과되면 고기는 퍽퍽해질것이 분명한데 이를 어쩌나, 아닌게 아니라 나중에 나와서 고기를 썰어 한입 문 남편이 "고기를 너무 익혔네" 하며 포크를 내려놓고 맙니다.
"... ... ... ..."
이럴 때 할 말이 없다고 해야겠죠?

여보, 2015년도 며칠 안 남았네요. 요즘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우리 둘 다 100살까지 산다고 치고 하루 세끼씩 40여년 밥을 더 차리려면 4만 3천800번을 차려야 하더라구요. 혹시 남은 40년 동안 4만3천800번은 당신이 밥 차릴 생각은 없나요? 그럼 나는 소리 지르지 않아도 4만3천800번 잽싸게 식탁 앞에 와 앉아 있을께요.^^

오늘은 내 곁에 있는 당신이라는 사람께 글 올리오니 부디 
한 발 
또 한 발... 
이렇게라도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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