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애 l 세기의 대결

바둑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며 관심이 생겼다. 그건 아마도 순전히 국민 남동생 택이의 여리고 예쁜 살인미소에 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문학회 모임 장소로 사용했던 문화센터에 기원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며 ‘달라스에도 기원이 다 있네!’ 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인데 말이다. 바둑 놓는 법은 모르지만 택이의 안쓰러운 대국을 지켜보며 쌍문동 골목의 식구들만큼이나 마음을 졸이며 응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불이 붙은 관심은 알파고(AlphaGo)와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의 대국으로 이어졌다. 진즉에 바둑을 배웠더라면 좀 더 흥미롭게 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해설해주는 바둑 기사가 있어 덜 답답하였다. 대국이 이어지는 동안 쟁점이 되었던 것은 과연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직관을 필요로 하는 바둑에서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바둑만큼은 인간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알파고와의 바둑 5번기 1국에서 이세돌이 패하고 말았다. 충격 그 자체였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전조를 알리는 시작이기도 했다.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알파고가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 우리 팀이 정말 자랑스럽다. 환상적이었던 이세돌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남겼다. 개발자로서는 당연히 기뻤을 것이다. 다섯 번의 대국에서 4:1로 이세돌 9단이 패함으로 인공지능을 뜻하는 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로 오랫동안 과학 기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고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알파고에 관한 관심만큼이나 AI 관련 주가가 오르고, 매체에서도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라지게 될 직업분석’ 등 다양한 AI 시대 도래에 따른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에서 기계와 인간의 대결 역사를 보았다. 1946년 도쿄에서 주판과 전동계산기의 시합이 있었다. 미군인 병사 토머스 우드가 전동계산기를 조작하고, 일본 체신국에서 근무하는 마쓰자키 기요시가 주판을 놓는 대결에서 4:1로 주판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1996년 IBM이 개발한 컴퓨터 '딥 블루'와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 대결에서 4승 2무 1패로 인간이 이겼으나 이듬해 두 번째 시합에서는 '딥 블루'가 2승 3무 1패로 이겼다. 그리고 2016년 3월, 바둑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세돌 9단이 한 번 이겨 준 게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는 대국이 심적으로 부담스러웠을 텐데 그의 대국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했고 솔직했다. 최선을 다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프로의 태도에 감동하였고 이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얼마나 바둑에 집중했는지 살다 살다 ‘불계승’이라고 써진 시커먼 머리통이 바둑판 위에서 날아다니는 꿈을 다 꾸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은 “인간의 이 작은 한 걸음이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달 착륙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낸 사건이었던 것처럼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 문명에 새로운 기술혁신의 물꼬를 텄다. 향후 기술의 미래는 인공지능 중심으로 방향을 잡을 거라는 것을 보여 준 대국이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이나 글을 쓰기 위한 문서 작성 외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인공지능이 겸비된 로봇 청소기나 가사 일을 돕는 기기들이 시판된다면 주부로서 희소식이 될 것이다. 반면 두려움도 크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서 1차 전형을 통과했다는 소식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인공지능의 발달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문학까지 정복당하고 싶진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인간의 지적능력을 넘어선 컴퓨터의 승리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리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은 영원히 인간의 속성으로 남을 거라는 것을 믿고 싶다. 기계가 출간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불행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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