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애 l 달라스의 봄

지난겨울은 겨울답지 못했다. 
모름지기 겨울이라 하면 매섭게 춥고, 눈도 내리고, 땅도 좀 얼어줘야 하는데, 따뜻한 날이 많다 보니 겨우내 날 파리들이 죽지도 않고 극성을 떨었다. 지난주, 한국에 눈이 많이 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멀긴 먼가보다. 여기까지 눈을 몰아주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곳에 사는 지인들의 페이스북은 온통 설국이었다. 올려놓은 사진들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눈 덮인 서울, 그리운 거리, 보고 싶은 얼굴들. 일순간 콧날이 시큰했다. 향수병이 도지려는지 지지리 궁상이다.
오늘은 딸내미와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보았다. 새 동네라 아직도 집 짓는 곳이 많아서 바람에 흙먼지가 날렸다. 안경이 없었다면 오래 걷지 못했을 것이다. 햇볕이 닿지 않는 응달은 쌀쌀했다. 집집마다 새로 입힌 잔디가 자리를 못 잡아서 두부 모판처럼 줄이 나뉘어있었다. 네모로 잘라 놓은 잔디를 높이 쌓아 둔 어느 집 앞의 흙더미 속에서도 봄기운을 주체하지 못한 생명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깥세상이 몹시 궁금했나 보다. 잔디에선 잔디뿐 아니라, 땅에 발을 묻고 사는 여러 식물과 땅에 의지해 사는 벌레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봄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아마도 민들레가 아닐까 싶다.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조금만 따뜻하면 봄인 줄 알고 땅 위로 얼굴을 내민다. 노란 단추 같다. 올해도 마른 잔디에서 제일 먼저 만난 건 민들레였다. 어떤 날은 너무 빨리 나와서 다음날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에 얼어 죽기도 했다. 안쓰러워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민들레는 그런 것에 연연하거나 꺾이지 않는다. 또 새로운 날이 오면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끔은 민들레의 그런 씩씩함이 부럽다. 어느 땅이든 뿌리를 내리면 아무리 제초제를 뿌리고 기계로 쳐내도 굳세게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베다니 장로교회 앞 주차장 한 켠에서 만발한 민들레를 보았다. 추워야 할 2월에 날이 따뜻하니 벌과 나비까지 찾아와 민들레 곁을 지키고 있었다. 햇살이 만들어 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작은 공간이 얼마나 예쁘던지, 한국학교에 아이를 픽업하러 가서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에 봄을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민들레에게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 단조를 들려주고 싶었다. 한창 물이 오른 민들레의 노란 꽃잎과 하얀색 솜털 우산 같은 동그란 씨가 연두색 잎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다음 주에 가보니 때가 된 씨들은 제각각 바늘 같은 몸에 하얀 깃털을 하나씩 달고 제 방을 떠나 바람이 가는 방향으로 홀홀 날아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꽃대 곁엔 여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태어나고 피고 죽는 것이 사람의 생을 닮았다.
봄은 키가 큰 ‘Bradford Pear Tree’에도 찾아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나무가 드디어 하얀 꽃망울을 터트렸다. 하루가 더 지나자 거무죽죽한 나뭇가지는 온통 하얀 꽃으로 채워져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배꽃 세상이었다. 초록 잎이 거의 보이지 않아도 화사한 것이 마치 오월의 신부 같았다. 겨우내 바짝 마른 나뭇가지를 뚫고 움을 틔워 꽃을 피워낸 배나무가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때가 되면 앵두만 한 배가 달리고, 잎이 돋고, 가을이면 세상에서 가장 고운 색으로 단풍이 들 것이다.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진 모습조차도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나무다.
Dallas Arboretum에서 전단이 왔다. 봄꽃 축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6명이 함께 갈 수 있는 쿠폰이 일 년째 내 가방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다. 다녀와서 앨러지로 옴팡지게 시달린다 해도 봄의 귀족들을 알현하러 가야겠다. 겨우내 말라버린 시심도 봄바람을 쐬고 오면 물이 오를지 모르니 말이다.
봄이다. 릴레이 하듯 바통을 주고받으며 피어나는 꽃들처럼 한국 정부와 달라스 한인사회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마음을 활짝 열어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보듬고, 화합의 꽃을 피워 신문에 훈훈한 기사만 오르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어이 찾아오고 마는 봄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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