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박사의 전쟁과 섭리 | 믹마스 전투(Michmash Battle) (1,048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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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땅에 정착한지도 어느덧 4세기가 지났다. 이 무렵, 이스라엘을 둘러싼 대부분의 도시국가 또는 부족들의 정체(政體)는 왕정체제였다. 영토와 자원확보를 위해 주변국과 쉴새없이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이들 소도시국가들로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왕(王)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이 시기에 신탁을 받는 사사(士師)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는데, 그들의 지도력에 힘입어 외세와 치열하게 교전(交戰)하며 용케 민족의 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는 사무엘이 사사(士師)로서 이스라엘을 치리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당시 라마(Ramah)에 거주하고 있던 사무엘을 방문한다. 이유인 즉, “이제 열국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며 국가 통치체제를 시대정신에 맞게 바꾸자고 한다. 즉, 신정체계에서 다른 나라와 같이 왕정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가나안땅에 살아보니, 사사건건 보이지 않는 신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강력한 왕이 영도하여 나라의 평안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좋아보인다. 다른 민족과 같이, 그들을 통솔할 멋진 홀을 손에 든 인간 왕(王)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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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마스 주변도시>
그들의 소원대로 베냐민 지파의 사울(Saul)이 미스바(Mizpah)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었다. 왕정제도에 익숙않은 탓인지, 말도많고 탈도 많았다. 사울이 왕이된지 2년째 되는해, 이무렵 블레셋족속은 이스라엘 서편 가자(Gaza), 에스글론(Ashkelon), 아시돗(Ashdod), 에글론(Ekron), 가드(Gath) 그리고 이스라엘 동편 요단강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빈번히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다. 더구나, 이스라엘  벤냐민지파땅내 게바(Geba)라는 곳에  자체 ‘수비대’를 설치, 이스라엘 공격의 전진기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게바는 지정학적으로 주위보다 다소 높은 고지군으로 형성된 천혜의 요새여서,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블레셋 수비대는 적은 병력으로 이스라엘땅을 용이하게 관측 및 감시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심장부에 적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에게 이 요새는 눈의 가시였다.
그리하여 사울은 블레셋 수비대를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낼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것이 ‘믹마스’ 전투의 발단이다. 이 계획을 위해,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중 3,000명을 선발하여 강도있게 훈련시켰다. 어느정도 부대로서 기강이 세워졌을 무렵, 사울은 전장주변에 병력을 투입하였다. 계곡(Wadi Suweinit Ravine)을 경계로 하여, 북쪽의 벧엘산(Mount Bethel)에는 자신이 2,000명의 병사를 인솔하여 그 곳에 주둔하고, 그의 아들 요나단(Jonathan)에게 나머지 1,000명을 지휘하여 계곡 남쪽의 기브아(Gibeah)에 진을 치도록 하였다.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에서 대책없이 적만 바라보자니, 젊은 요나단은 좀이 쑤셨다. 이에 요나단이 독단으로 게바에 올라가 블레셋 수비대를 기습공격 하였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블레셋진영과 이스라엘백성 모두 혼란에 빠진다. 어줍짢은 이스라엘군에게 일격을 당한 블레셋은 자존심이 상했다. 블레셋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믹마스를 향하여 집결한다. 블레셋은 철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쟁에 필요한 칼, 창, 심지어 전차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강한 부족이었다. 이날 믹마스에 집결한 블레셋의 전투력은 전차가 삼만승, 기병이 육천, 그리고 병력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군의 움직임을 보고, 사울은 긴급히 그의 2,000병사를 대동하고 길갈로 피신했다. 동시에, 이스라엘 온 백성은 블레셋군의 규모에 기겁하여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부하들도 절반 이상이 시나브로 떠나버려, 수하에 기껏 600명에 남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마음이 급박하고 초조하다. 그런데,  사사 사무엘이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길을 가르칠때가지 너는 (길갈에서) 칠일을 기다리라”(삼상 10:8) 라고 한다. 지도자는 위기상황 때에 외로운 결심을 해야하는 법, 일주일을 기다리자니, 그나마 남은 병사도 모조리 탈영할 것만 같다. 이에, 사울은 하나님의 대언자 사무엘의 말을 어기고 본인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전쟁 전 ‘제사의식’을 치른다. 불행히도, 이 행위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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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군 병력이동>
블레셋군이 드디어 믹마스에 집결완료했다. 믹사스계곡은 천혜의 자연 방어물이다. 이를 놓고 대치할 경우 어느편도 상대를 선제공격할 수 없다. 이를 알기에, 블레셋 왕은 일부 경계병력만 남겨놓고, 본대는 이스라엘백성들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을 지시한다. 이윽고 블레셋군은 3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제 1제대는 북쪽 오브라(Ophrah)방향으로 진군하여 수알(Shual)땅으로, 제 2제대는 서쪽 벧-호론(Beth-horon)방향으로, 제 3제대는 동쪽 스보임골짜기(Zeboim Valley)가 보이는 광야길로 이동한다.
한편, 사울은 잔여병력 600명을 데리고 길갈로부터 기브아로 이동하여 블레셋군의 동향을 살폈다. 그리고 병력을 움직여 미그론(Migron)일대로 이동시켜 적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였다. 같은 시간, 블레셋의 수비대를 격파한 후, 요나단은 게바에 대기 중이다. 사울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지만, 코앞에 적을 마냥 지켜 보기가 답답하다. 전쟁은 위세와 역량의 결정이다. 특히, 험난한 지세를 사이에 두고 있을 때는, 방심하고 있는 적에 대하여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 전세를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다. 요나단은 단 한명의 부하만 대동하고, 야간에 믹마스 계곡을 건너기로 작정한다. 블레셋 경계병을 제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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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마스 계곡(세네(좌측)와 보세스(우측) 절벽)>
보세스(Bozez)와 세네(Seneh)라 불리는 험준한 믹마스계곡의 바위를 손과 발로 기어올라 적진에 진입, 반경 25m있던 적 경계병 20여명을 순식간에 제거했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블레셋군은 큰 혼란에 빠진다.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칠흑같은 밤에, 그들은 각각의 칼로 자기들의 동료들을 쳤다. 요나단이 기습공격 하였음을 인지한 사울은 곧 자신과 함께 한 백성들에게 적진을 향해 공격을 명령했다. 블레셋군에 배속되어 군인생활하던 히브리인들도 민족을 위하여 이스라엘군의 편에서 전투를 치렀다. 겁이나 산지로 도망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장으로 나와 블레셋군과 싸운다. 그야말로 민·군 총력전을 치렀다.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리였다. 미스바전투 이후, 대(對) 블레셋과의 교전에서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을 약탈하기 위하여 이미 출발한 블레셋군을 추격해야한다. 사울은 공격기세를 유지하여 북편(벧-아웬, Beth-Aven)과 서편(아얄론, Aijalon)으로 진출한 블렛군을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였다. 사울이 워낙 급박하게 몰아붙이므로 쉴새없이 전투에 몰입하였던 이스라엘 병사들은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런데, 사울이 느닷없이 전 병사에게 금식령을 내린다. 이 명령은 그에게 첫번제 올무, 즉 스스로 제사를 드린 죄에 이어, 두번째 올무가 된다. 병사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음식을 먹으므로 군령을 위반하였다. 게다가, 밤낮으로 치른 전쟁으로 병사들의 전쟁피로가 누적되어, 전투의지도 식어가고 있었다. 이렇듯, 전장군기가 악화되자, 사울은 스스로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이 상황을 돌파하고 싶었다. 향후로도, 주변부족과의 지속적인 전쟁이 있을 터인테, 자신이 이끄는 모든 전쟁은 바로 ‘여호와의 전쟁’임을 백성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대제사장 아히야(Ahijah)의 권유로 그가 직접 하나님께 “주께서 그들을[블레셋]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라고 물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한다. 사울의 왕으로서의 권위와 전쟁에서의 승리는 여기까지 였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능력에 의지한 사울은 자신의 말에 스스로가 올무에 걸려, 백성들의 신망을 잃음으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게된다. 이에, 이스라엘 군은 추격을 멈추었고, 살아남을 블레셋군은 본거지로 돌아가므로 향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게 되었다.  왕으로서의 사울의 운명도 서서히 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그것은 다윗왕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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