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돌풍, 그조차도 민주주의 DNA의 승리 <이준열 편집국장>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또 돌풍의 주역이다. 워낙 오랜 기간 무명으로 정치생활을 해오던 인물이 대선에 임박해서 급상승했기에 더 충격이다. 
아이오와 코커스 선전에 이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민주당 승자로 우뚝 선 버니 샌더스다. 그는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표방한다. 극우파로 핵돌풍을 일으켰던 트럼프처럼 샌더스는 극좌파로 회오리를 몰고 왔다. 초반 결과일 뿐이기에 대통령 후보로 낙점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그의 등장이 미국 대선에 긴장을 불러일으킨 건 맞다.
1920년대의 노만 토마스 이후 90여년만에 첫 사회주의자 후보인 것도 눈에 띄지만 전면에 부각돼 이변을 기대하는 위치인 건 더욱 흥미롭다. 트럼프가 소수세력과 진보에 눌려있던 보수 중산층들에게 등을 긁어주는 포퓰리즘 언행으로 인기였다면, 샌더스는 노동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또 다른 희망의 선동정치로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말 그대로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를, 경제체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주의자다운 공약과 행동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정치생활 50년간 한결같이 약자의 편에 서있었다는 진정성이 최고의 무기다. 70대의 노령이지만 말과 행동에서 꼿꼿함이 기성 정치인과 차별되는 이점도 있다. 1%의 부자들에게 집중된 부를 타개하고자 월가 금융계 ‘공룡’을 겨냥한 독설, 부자에게 더 세금을 매기고 최저 임금을 올리자는 그의 주장은 대나무처럼 곧고 일관됐다.
99%의 고통받는 이들을 대변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으니 승산은 있다. 문제는 99% 모두 개별 체감을 하느냐다. 99%에 속한 이민자나 아시안들에 대해서 샌더스도 데면데면하고, 우리도 그는 여전히 낯설다. 
경이로운 건 미국에서 사회주의자가 대선 주자로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분위기다. 낯설어도 인정해주는 이념의 스펙트럼과 그 포용력이 부럽다. 또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비빔밥’ 이념조차 존중해주는 사회상이 부럽다. 한국처럼 사회주의는 다 공산주의여야 하고 시위와 투쟁 및 반정부적 극단적 행태여야 한다는 흑백논리 희생양이 안된다는 게 부럽다.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다행히 칼 마르크스 주의에 의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사회주의다. 계급투쟁이니 폭력 혁명이니 그런 방향이 아니고 의회주의적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 즉 모두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를 구현해보자는 이상주의다. 
방법론적으로 폭력과 투쟁성이 제거됐다는데서 일단 공포와 불안을 덜 준다. 한국과 같은 곳에서처럼 좌파니 빨갱이니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다. 실제 샌더스의 대선 출마변도 힐러리 정책을 조금 더 진보 쪽으로 돌려보자는 소박한 목표였다고 한다. 물론 힐러리의 죽도 밥도 아닌 이념성으로 인해 샌더스가 더욱 부각되는 결과로 나타나곤 있지만. 
샌더스의 행동을 보면 사회주의 원조 칼 마르크스의 주장이 실현되는 듯 하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언행이 일치하는 모습, 진정성있게 일관된 소박한 삶, 선거 전략에서도 남의 약점을 헐뜯는 네거티브 전략보다는 공약에 천착하는 소신과 뚝심까지.
사실 대통령에 도전하는 일은, 그래서 그 수많은 상대와 공격들에 맞서는 일은 자칫 자신을 잡아먹는 일이 되고 만다. 동서양에서 이 ‘금빛’ 허영의 꿈을 꾸다가 인생과 운명이 고장나버린 이들이 한둘이겠는가. 니체가 그들에게 한 말이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과 같이 되지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심연을 굽어볼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본다.”
일본의 대표 지식인 가토 슈이치가 자서전 ‘양의 노래’에서 권고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참된 뜻이 배반 당하고, 이상주의가 이용 당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제의 충성이 오늘의 모반이 되고 만다.”    
따라서 정치와 대선이 의미있어지도록 신선한 후보들이 나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트럼프가 뜨던 때 인용한 미국인의 자동차에 있었다는 문구 “우리가 투표하는 게 신의 뜻이라면 후보는 주셨어야 하지 않는가”가 샌더스 부상으로 다시 떠오른다. 
또한 무슬림이 많은 섬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며 첫 문민 대통령이 되는 기적의 주인공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모든 사람에겐 민주주의 DNA가 있다고 믿는다”는 말도. 누가 되든 결국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라는 말로 들려 기쁘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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