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는 대만에서 태어나 자란 16세 소녀다. 중학생 나이인 그녀가 한국 걸그룹에 합류했다. 외모와 끼가 되는 덕에 걸그룹 멤버가 된 그녀는 나름 인지도도 생기던 중이었다. 그녀 목표는 열심히 노래해 성공해서 고국 대만에 금의환향하는 것일 수 있었다.
결국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도 생겼다. 출연한 쇼에서 제작진 요구대로 열심히 했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준비돼 있어서 그것도 열심히 흔들었다. 마치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듯이.
그런데 그게 대형 문제로 이어졌다. 대만 출신이지만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중(親中) 작곡가 겸 가수 황안이라는 중견 연예인이 일러바쳤다.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고 중국 네티즌들을 흥분시킨 것
중국에서 즉각 쯔위 소속 걸그룹에 대한 거부 운동이 벌어졌다. 중국에 진출해 재미를 보고 있던 한류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판이었다. 쯔위는 물론 소속사에서 급히 머리를 굽히며 중국에 사과를 했다. 쯔위는 ‘중국은 하나다’며 읍소했다. 즉, 중국이 중국이지 대만은 그저 대만일 뿐이라고.
그러자 대만에서 들고 있어났다. 쯔위에게 이런 사과를 하게 만든 중국과 한국 소속사 등에 대해 분노한 것이다. 마침 대만은 대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당격인 민진당 총통 후보 차이잉원이 쯔위가 불쌍하다며 두둔하고 나섰고, 대만인은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결국 현 집권당인 국민당 후보를 대파하고 총통에 선출된다.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든 사건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일파만파로 번져 대만 총통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대만과 중국 간 골은 상상하는 것보다 깊다. 그걸 건들면 절대 묵과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대학에 다닐 때 중국학을 공부하느라 관련 서적을 구입하러 한국 명동의 화교 운영 서점에 들른 일이 있었다. 화교 직원들이 한국말로 따뜻하게 맞이해줬다. 나는 원하는 책들 이름이 적힌 쪽지를 건네줬다.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중국어로 나에게 뭐라고 차갑게 말하더니 쪽지를 던지듯이 되돌려줬다. 언뜻 알아듣기론 이런 책은 여기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알고보니 대만 학자의 저서가 아니라 중국(당시는 본토로 불렀다) 학자 저술서였다. 서점 직원들은 그 뒤 내가 뭐라고 말해도 대꾸도 안하고 자기들끼리 중국어로만 떠들었다. 나를 바보 취급하며 욕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나는 그날 쯔위보다 더 욕을 얻어먹었던 것 같다.
대만 민진당의 대선 압승은 그간 집권당인 국민당이 중국 편향의 정치를 펼친데 대한 반발이라는 지적이 있다. 최근 대만 젊은이들은 첨단기술 메카인 미국에 진출한 뒤 실력을 쌓으면 대만 대신 중국으로 진출해 그곳에서 잘 사는 경향이 있었다.
대만판 햇볕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국민당 정책으로 중국과 교류협정, 교역은 증대하긴 했지만 오히려 대만 무역의 중국 의존도를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대만은 오히려 경기 침체의 역풍을 맞았다는 것. 대만의 기술과 자본, 인재가 대거 중국으로 유입됐다는 대만 자국내 불만이 팽배했다가 이번 총선에 터져나왔다는 분석이다.
일명 대만의 ‘딸기세대’의 반란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은 대만의 20대, 30대 세대인 이들이 쯔위를 응원하고 민진당 차이잉원에게 몰표를 던진 장본인들로 봤다. 딸기처럼 겉만 보기좋지 물컹해서 건들면 터지는 유약함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딸기들, 즉 사회와 남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이들이 이번에는 들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눈치를 보며 ‘하나의 중국’ 정책에 편승하는 정치권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표로 표출한 것이다.
딸기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물러터져 보였지만 분노하면 그 어느 것에도 몸을 던져 제 뜻을 표현하는 알찬 심지가 영글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분연함을 보니 한국의 젊은 세대 모습이 투영된다. 국가관이나 민족성에서 더 딸기같아 보이는 우리 아이들. 외형면에서 더 나아진 우리 젊은이들인데 사상은 하나의 입장과 기치 아래 모아지지 못하는 듯한 괴리감.
얼마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은 중국 관련 글도 많이 썼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다”는 글을 생전에 남기셨는데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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