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드림팀, 떠들 때와 침묵할 때를 알려주다_ 이준열 편집국장

성년후견인 재판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 큰 어른에 대한 법적 후견인을 정해주는 재판이다. 질병이나 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사무 처리 능력이 없는 성인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하고 치료와 요양도 도와줄 후견인을 정해준다. 한마디로 노령으로 치매나 정신 문제를 겪고 있는 부모나 어른에게서 재산 관리나 결정권을 뺏겠다는 재판이다. 
그런데 이런 재판을 대기업인 롯데 창업자이자 총수인 신격호 회장이 받았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70년간 일군 대기업 총수로 천하를 호령하던 그가 재판장을 향해 나아가 ‘난 아직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는 재판을 받게 됐으니 그 신세가 어이없을 터. “내 살다가 이런 일로 법원에 갈 줄 몰랐다”며 말끝을 흐린 그의 뺨에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고 한다.
또 다른 눈물에 대한 반응도 분분하다. 필리버스터로 테러방지법을 막고자 며칠을 보낸 야당 의원 중에 단상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필리버스터 토론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의원은 공천 탈락에 대한 감정이 복받쳐서였고 또 어느 여의원은 야당에게 표를 찍어달라며 질질 울었다. 필리버스터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 호소의 장으로 만들었으니 추태란 소리들어 마땅하다. 
사실 청년실업으로 나라가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귀족 대우를 받는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놀이’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연 1억5천만원을 받고 단 하루만 의원직을 행사해도 죽을 때까지 120만원의 공짜 연금을 받게 되는 그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200가지인데, 그들이 국민에게 주는 혜택은 단 한가지도 느껴지지 않는 이 모순. 그들의 눈물도 기껏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한 연기일 뿐이니 좌절이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건 의외로 ‘스포트라이트’였다.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미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당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문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톨릭 교인이 주류인 보스턴에서 각계 유지들의 압력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사실을 찾아내는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활약상이 담긴 영화다. 한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화하기 위해 시간이 얼마 걸리든 자유롭게 탐사하도록 몇명으로 구성된 드림팀의 꿋꿋한 기자 정신,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을 잘 반영했다 싶더니 진짜 인정을 받았다. 
온라인과 디지털 시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쇠락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의미를 되새겨준 영화일 것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 한동안 그 감동에 빠져 있었다. AP 통신은 “비인기 직업을 다룬 영화가 약자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평했다. 제작자도 “기자들의 영웅적 노력이 없었다면 우린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며 “그들은 지구적 변화에 영향을 줬고 이런 특종 보도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특종 보도와 탐사 보도. 이는 모든 신문 언론사들의 꿈이다. 그 어떤 외압과 회유에도 굴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그 취재와 보도가 ‘사회와 인류에 올바른  영향과 변화’를 줄 것이라는 소신으로 파헤치고 매달리는 그런 기자팀과 기사 말이다. 
단순히 누군가를 비호하거나 득을 보기 위해 무차별적, 무분별적 지면과 기사를 낭비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초적 기사로 관심을 얻어보겠다고 상호 비방이나 사생활 들추기 등의 황색 저널리즘에 영합하는 것도 아니다.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데  같이 부채질하는 과잉 보도 행태는 더더욱 아니다.
언론은 마치 이런 메시지와 같아야 한다. 조은 시인의 ‘동질’에서 말하는 문자 메시지다.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잠든 적도 많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 메시지를 쓴다/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행운을 빌어주는 진정한 메시지가 아닐거면 침묵하는 게 낫다. 강은교 시인처럼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다. 자기 이름 명성에 눈 먼 의원들처럼 말만 앞세우거나 거짓 눈물 흘릴 시간에 진정성과 내공 쌓을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진실을 제대로 떠트리는 날, 입 열겠다 다짐할 것이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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