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의 ‘빅쇼트’, 잠들기 전 더 가야할 길이기를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는 어렵다. 주제 자체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실화여서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경제, 금융 지식과 전문 용어 이해가 필요하다. 
제목인 빅쇼트라는 말도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주인공들은 당시 미국 경제에 대해 모두가 장밋빛으로 보며 ‘예스’라고 말할 때 그들만 최악의 금융재앙을 예견하며 ‘노’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감히 그 ‘노’에 돈을 건다. 
결국 그들의 예측대로 미국은 믿었던 주택 시장 붕괴로 경제 시스템 몰락의 현실을 겪게 되고 ‘노’에 돈을 건 이들은 보답을 받는다. 그러나 보답을 얻기까지 온갖 오해와 비아냥을 받으며 자신들의 예측을 고수하느라 겪는 마음 고생과 갈등도 그려진다.   
천문학적 돈을 가지고 놀면서 배짱으로 투자하고 온갖 수치로 예측하는 등, 복잡하고 상업적이며 긴박한 영화인데 중간 중간 삶에 대한 메시지를 툭툭 던진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는 말부터 영화속 어느 술집에 적힌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를 혐오한다’는 촌철살인적 한마디까지.
사실 빅쇼트는 삶의 역발상을 외치는 것일 수 있다. 투자에 있어서도 역발상 투자자들은 남들이 찾지 못한 곳을 찾아내 전망하고 투자한다. 가령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이상 하락할 곳이 없다며 그 분야에 투자한다고나 할까. 문제는 예측이 맞으면 대박이지만 틀리면 쪽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 소리와 야유 듣기에 딱이다. 
그러나 단순히 ‘감’이나 ‘배짱’으로 하는 역발상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뭔가를 확신하는 이의 고집이라면 더 고민이다. 구약의 요나에서도 그런 갈등이 그려졌다. 신은 회개하지 않으면 한 나라를 심판하겠다는 말을 전하라는 임무를 그에게 줬다. 모두가 즐기며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회개해야 한다, 아니면 망한다는 말을 전하라니. 그는 도망 다녔다. 자기 말을 아무도 안 믿을 게 뻔한데다, 괴짜에 미친 놈 소리 듣기 딱이어서다. 솔직히 내가 요나여도 도망다녔을 것이다. 웃기는 소리한다고 무시 받을 게 뻔하니. 
결국 남과 다른 뭔가를 보고, 알고, 예견할 수 있다 해도 그를 외치고 고집하며 끝까지 견지할 용기와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속칭 선지자나 선견자의 반열에 낄 수 있을 터. 
‘헤게모니 이론’ 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라면 달랐을 것이다. 파시스트에 의해 옥에 갇혀 병마와 고독으로 지내면서도 그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놓치 않고 부르짖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그는 말한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다”고. 그것은 그가 예견하는 미래가 부정적이지만 그를 밝히려 주장하는데는 비관적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는데 내가 비축해 놓은 의지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이제 세상은 시와 글쟁이들을 싫어하는지 모른다. 돈과 상업성, 기계와 첨단성, 파워와 정치성, 이런 세상에서 글쟁이들의 미래향을 꿈꾸는 노래는 참으로 유약해 보여서다. 오죽하면 시인 함민복이 ‘긍정적인 밥’에서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라고 자탄했을까.
돈 버는 영화 보다말고 자문한다. 왜 가난한 글을 쓰고 있을까, 왜 꿈꾸는 언론인의 밥을 먹고 있을까, 왜 부정적인 세상을 지적하는 지성을 가시면류관처럼 뒤집어쓰고 살고 있을까. 독재자 프랑코가 스페인을 지배하는 한 절대 첼로를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연주자 파블로 카잘스가 부럽다. 프랑코 정권을 승인한 영국의 장관이 그를 초청해 이유를 설명하겠다고 하자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정치를 말할 속셈이지만 나는 도덕을 논하고 있는거야”라며. 
언론과 신문, 그리고 글쟁이의 자세를 새삼 다짐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왕 흉내낸 김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도 첨한다.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더 가야 할 길이 있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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