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결과가 나오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누가 승자가 되는지 꼭 보고 싶어서다. 미국에서는 새벽인 한국 축구 경기도 아니고, 다른 주에서 밤 늦게까지 개표를 하는 미국 대선 경선도 아니었다. 바둑이었다. 구글 인공지능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2국이었다.
이미 1국에서 알파고 승리로 난리가 났었다. 두살배기 인공지능 기계가 바둑 나이 5천살의 인간을 이겼다고 호들갑이었다. 첫 경기 패배를 ‘계산 장치’인 기계의 정확한 계산력 정도로 추켜세우며 애써 위로했다. 첫 경기라서 그렇지 인간이 결국 이길 것이라는. “알파고가 한 번만 승리해도 사실상 인간의 패배”라 했지만 아직은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국에서도 패하자 분위기는 싸해졌다. 결과를 지켜본 나도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바둑도 잘 모르고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는데, 당연시 되던 인간 승리 대신 연속 인간이 패하는 모습을 보고 나자 불안과 우울함마저 엄습했다.
온통 인공지능에 대한 기사들로 새삼 충격을 받은 상태여서일까. 모르는 사이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인공지능 의사가 벌써 미 유명 암센터에서 보조로 취업했다느니, 미 프로농구팀에서는 모든 농구 데이터를 분석하라고 인공지능을 고용했다느니, 제약회사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사로 위촉해 경영 조언을 듣고 있다느니까지.
이전 단순히 공상과학으로 치부하던 ‘기계 세상’이 현실로 다가온 것 같았다. 2040년대가 되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지능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란다. 자율성을 갖추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수준의 기계가 나올 수도 있다는데 그 때가 ‘천국’이 될 지, ‘지옥’이 될 지 모른다는 설레발마저 떠돈다.
너무 호들갑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든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의 “결과와 상관없이 승자는 인류”라는 말처럼 말이다. 어찌됐든 인공지능 발전의 혜택은 인류가 고스란히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위안이다.
실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하나가 세계 수천명의 바둑 고수의 하나가 되기 위해 들어간 CPU는 1200개고, 그래픽처리장치도 180개가 탑재됐다. 입력된 기보 16만건을 토대로 지난 몇개월간 매일 3만번의 실전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그만큼 쉬운 과정도 아니고, 또 인간이 아니면 그렇게 만들 수 없다.
인공지능 연관 기술의 대표적인 게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 누구인지 인식해 ‘꼬리표’를 추천해 주는데, 세계 10억명 이용자의 사진을 일일이 처리할 수 있는 게 인공지능 덕분이다. 그런 페이스북의 진화는 알파고처럼 은밀하면서도 강하다.
엄지를 치켜든 ‘좋아요’로 상징되는 페이스북의 전략은 인간의 감성을 역이용한 것이다. 남에게 반응하길 귀찮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페이스북은 간편하면서도 매우 저렴한 방법을 찾아냈다. 귀찮게 말 걸어오는 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저 클릭 한번으로 해결해줬다. 그런데도 ‘좋아요’를 받은 이들은 엄청난 반응이나 대접을 받은 듯 으쓱해진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좋다’는 말 하나가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목마르게 원하는 반응이라는 걸 십분 이용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페이스북은 그 수많은 이용자들의 취향과 선호도 정보를 착착 쌓아가는 이득을 취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화면을 채워줘 마치 모든 게 좋은 세상에 온 것과 같은 ‘가상 현실’을 눈 앞에 펄쳐보인다. 분명 인생사는 좋기만 한 게 아니고, 싫어도 해야 하고 부딪혀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좋은 것만 말하고 보고 교감하며 소위 ‘자뻑’의 사이버 세계에 취하게 만든다.
페이스북도 최근 ‘좋아요’에서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의 6가지 버튼으로 늘렸다. 그런데도 ‘싫어요’는 없다. 아직은 ‘싫다’는 반응에 ‘쿨’하게 대할 인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리라. 진실을 회피하면서, 그나마 좋아요 남발로 끌어모은 모래알같은 친구들이 떨어져 나갈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솔직히 때론 ‘정말 싫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행태를 페이스북에서 보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무서워서만은 아니다. 개인적 소심함과 동정심의 감성이 더 커서다. 어떤 상황, 어떤 관계, 어떤 반응에도 기계처럼 흔들리지 않고 계산된 전략과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데, 자꾸 양 옆을 보고 위 아래를 살피는데 익숙해져서다. 아직은 사람인 게 맞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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