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다. 그런데 이 여성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설명불가한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됐다.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고 20대 후반의 모습 그대로다. 주변인들은 나이와 함께 늙어가는데 본인만 늙지 않으니 100세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20대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큰 복일까. 인간은 모두 늙지 않고 나이 먹지 않기를 바라니까. 실제 늙어보이지 않기 위해 수술이든, 약이든, 시술이든 안하는 게 없지 않은가. 항상 20대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운이고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이 여성이 할머니가 된 자신의 딸과 대화를 나눈다. 딸이 엄마에게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라고 말한다. 엄마는 “나에겐 미래가 없다”고 거부한다. 딸은 웃으며 “엄마가 가진 건 온통 미래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다시 엄마는 대꾸한다. “나는 남들과 함께 늙을 미래가 없다”고.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나이를 먹지 않고 늙지 않으니 남은 건 온통 미래뿐인 걸까. 아니면 반대로 남들과 함께 늙어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래가 없다는 게 맞는 것일까. 실제로 이 여성은 젊은 남자를 만나도 결국은 먼저 떠나버린다. 자신만 안 늙으니 그 관계가 오래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미리 도망간다.
미국 영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The Age of Adaline)’이 던지는 화두다. 주인공 여성은 묻는다. 늙지 않는 나는 과연 미래가 있는건가, 없는건가라고. 영화는 이 여성이 흰머리가 나는 걸 발견하고서 기뻐하면서 끝난다. 함께 늙는 것의 행복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황지우 시인이 ‘늙어가는 아내에게’ 말한 소원과도 같다.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삶은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는 말.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기에”라고 지적한 시인은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할 수 있는 말일 거야”라고 고백한다.
이는 고은 시인이 ‘하루’에서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역설적으로 말한 것과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늙지 않고 저물어가지 않으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다. 함께 늙어가고 나이 들어가야 정상이고, 같이 늙는 행복을 공유하게 된다.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또 늙는구나”라고 말하던 버릇을 바꿀 때다. 같이 늙어간 한 해를 통해 함께 세월을 통과했다고 기뻐하는 게 맞다.
김왕노 시인은 우리가 늙어가는 일이, 한 해씩 보내는 일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별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는 백년이 참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는 것. “쓰린 몸에, 감각에, 눈물에 스쳐가는 세월이 무심하다 생각되고, 백년 산다는 것은 백년의 고통뿐이라 생각된다”고. 사는 게 아프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사실은 고마운 일이다.
뉴스코리아도 지난 11월 11일에 창간 15주년을 맞이했지만, 기념사진이나 인사말도 없이 지나갔다. 15년간 지역 한인들과 함께 늙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륜과 경험이 쌓인 신문사로서 이제는 조용한 미래를 꿈꾸는 마음가짐으로 차분히 보냈다.
물론 인생으로 치면 몇십년일 수도 있는 신문사 나이 15년의 주름살을 감추고 싶지 않다. 그 영욕의 세월이 준 여러 영광과 추억은 물론이고 그간의 상처, 얼룩, 흰머리, 잔주름조차 없노라고 억지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역 한인사회와 함께 한 살 더 나이를 먹어갈 수 있다는데 대한 다행스러움과 행운에 조용히 감격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게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미래. 사랑하는 한인들과 동일한 이민 현장에서 같은 걸 느끼며 같은 걸 꿈꾸며 함께 나이들어간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쓴 시에서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나는 정신을 차리고/길을 걷는다/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그것에 맞아 사라져서는 안되겠기에.
새해 인사로 딱이다.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 그거면 됐다. 명멸되지 않고 옆에 있어주기 위해 미세한 빗방울조차 두려워하는 신중한 행보로 걸을 수 있어서. 함께 늙어갈 미래가 있다는 그거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기에.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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