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봉의 한국 문화 산책: 밥이라고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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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을 보면 ‘밥이라고 하는 것이 나라에 오르면 수라요, 양반이 잡수면 진지요, 하인이 먹으면 입이요, 동배(同輩, 또래)가 먹으면 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같은 밥이라도 먹는 주체에 따라 ‘수라’도 되고 ‘진지’도 되고 ‘입’도 되고 ‘밥’도 된다. 뿐만 아니다. 불교에서는 ‘공양’이라 하고 제사상에 오른 밥은 ‘메’라 한다. 한 가지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이처럼 다양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어렸을 때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밥 잡수세요” 했다가 혼이 났던 기억들을 되새겨 보면 왜 이처럼 다양한 표현이 발달하게 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경어법이 유달리 발달한 언어가 우리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진지’라고 해야 언어 예법에 맞는 표현이 되지만, 아랫사람에게 “진지 먹었니?” 하면 이상한 표현이 되고 만다. 지금도 어른들에게는 ‘진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식사’라는 한자어 표현 하나가 ‘진지’와 ‘밥’을 어우르는 표현으로 두루 쓰이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진지 잡수세요’ 보다 ‘식사하세요’가 요즈음의 대세이다. 편하기도 하지만 경어법이 몸에 밴 우리들에게는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같은 뜻의 말이라도 한자어로 바꾸어 말했을 때 더 품위 있는 말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양하게 표현되는 순수한 우리말은 점점 사라지고 한자어 하나가 그 다양한 표현들을 대신하고 있는 현실에서 편리함에 대한 감사보다는 표현력의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수라’는 궁중 용어로서 일반인들은 쓸 일이 없는 말이고, ‘입’이라는 표현은 조소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 현대 사회에서는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말이니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즉, ‘수라’는 왕조 사회가 아닌 현실에서 사용자 자체가 사라진 것이고, 입은 입술에서 후두(喉頭)까지의 부분을 가리키거나, 음식이나 먹이를 섭취하며 소리를 내는 기관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의 수효나 한 번에 먹을 만한 음식물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하인들이 밥을 먹을 때 밥 그 자체보다 먹는 입의 수효나 그 양을 나타내는 말로 바꾸어서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비하시킨 것이어서 계급사회가 아닌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용어이다.
이 중 궁중에서 사용했던 ‘수라’는 그 어감이나 뜻 때문에 아직도 종종 식당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그 잔재가 남아 있는데 어원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능화, 주시경 선생은 몽고어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는데 몽고어의 어떤 단어에서 차용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고려와 원나라의 역사적 관계를 보면 몽고어 기원설에 무게가 실린다. 고려는 1231년부터 여러 차례 몽골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항쟁을 이어갔지만 1270년 결국 원나라(몽골족)에 공식적으로 복속되고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된다. 원나라와 고려 사이에 사람들이 왕래하고 물품 등이 교류되면서 고려에서는 ‘몽고풍’이라 하여 몽고의 풍속이 크게 유행했고, 고려의 풍습 또한 원나라에 전해져 유행했는데 이것을 ‘고려양’이라 했다. 충렬왕 이후 고려의 세자는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원나라에 머물렀는데, 이때 고려 세자궁의 생활양식이 원나라로 전해졌고, 고려의 옷, 신발, 모자 같은 복식 문화나 생선국, 닭고기, 인삼주 같은 음식문화 등도 원나라의 생활 풍습에 영향을 끼쳤다. 반대로 여자들의 족두리나 남녀가 옷고름에 차는 장도, 신부가 얼굴에 찍는 연지 등의 풍습이 몽고에서 고려로 유입되었고, 우리말에 ‘장사치’, ‘벼슬아치’ 등과 같이 어미에 ‘-치’를 붙이는 언어 습관도 이 때 들어온 몽고어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수라’가 중세 몽고어의 ‘탕(湯)’을 뜻하던 ‘술런’의 차용어라는 사실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라’의 이전 어형은 ‘슈라’인데 몽고어의 음운사에 따르면 ‘술런’이 우리말에 들어와 ‘슈라’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에 들어온 ‘슈라’가 지금과 같은 ‘수라’로 변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인데, 몽고에서 ‘탕’을 뜻하던 단어가 고려에 들어와서는 어떻게 ‘임금이 먹는 밥’이라는 특수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차용되는 과정에서 특수한 의미로 전이되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또 이것이 궁중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만 사용된 단어라는 것에 착안하면 이 의문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수라상은 12첩 반상차림으로 원반과 곁반, 책상반의 3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반에는 흰수라, 탕, 찌개, 찜, 전골, 김치, 장과 함께 12가지 반찬을 놓았으며, 곁반에는 팥수라, 곰탕, 육회, 수란 등과 주발, 은공기, 은접시 등의 그릇이 놓였고, 책상반에는 그 외 전골, 장국, 고기, 참기름, 계란, 각색 채소 등을 놓았다. 수라상은 기본 음식 외에 12가지 찬품이 올려지는 12첩 반상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이어도 상관이 없었으며 내용은 계절에 따라 바뀌었다.
수라는 궁중에서만 사용된 특수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다양하고 풍성하고 호화스러웠으니 이것을 일반인들이 먹는 밥과 같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법도 하다. 요즈음이야 일반인들도 여유만 있으면 얼마든지 호화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렇게 다른 말로 표현해야 좀 더 실감나는 표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관리형 홈스테이 기숙학사
elimedu@gmail.com|972-998-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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