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그분의 직함은 ‘주 휴스턴 대한민국 총영사관 댈러스 출장소장’이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동기부여를 받은 것은 대학시절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였다고 한다. 시골에서 태어나 외국에 가보고 싶은 동경심이 한 몫 했고, ‘총성 없는 전쟁터’라 일컫는 외교현장에서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도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역신문에서 본 첫인상은, 눈두덩이 약간 볼록하고 크다 싶었다. ‘눈이 크면 겁쟁이(?)’라는 속설이 있긴 한데, 달라스 최초의 공관장으로서 동포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불철주야 열정을 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는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그분을 만난 것은 2013년 달라스노인회관에서 있었던 8.15 광복절기념식에서였다. 한인회 김영복 수석부회장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었고, 함께 점심을 하면서 느낀 점은 고위 공직자로서 권위의식은 온데간데 없고 서민의 풋풋함이 풍기는 매력덩어리였다고나 할까? 이야기 도중 한가지 제안에 깜짝 놀랐다. “문화센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라나는 2세, 3세들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할 테니까요.”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당치도 않은 말씀. 멀쩡한 정신으로 누가 그 많은 돈을 기부하겠는가? 과거 몇몇 한인회장들이 내세운 공약은 공수표의 남발이었는데….” 그러나 안영호 한인회장의 추진력은 남달랐다.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마침내 ‘달라스한인문화센터’를 탄생시켰으니!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뜻있는 분들이 십시일반 협조하면서, 나 또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장손자 ‘오승리’ 이름으로 동참했었다. 돌아보면 오랜 숙원사업이던 문화센터의 탄생은 그분의 관심과 격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다소 분분하긴 했지만, ‘삼간초가도 내 집이 최고’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전엔 뿔뿔이 흩어져 있던 한인단체들이 한 곳에 모여 ‘봉사’라는 길을 함께 걷는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화합의 현상이라 하겠다.
김동찬 출장소장, 그로부터 오버랩 되는 한 분이 있었으니,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보릿고개를 넘게 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생뚱맞다 싶겠지만 아마도 ‘소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 게다. 5.16 당시 별 두 개였던 육군의 ‘소장’ 계급과 총영사관출장소의 ‘소장’은 전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퍼즐을 맞추듯 공통점을 찾다 보니,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지도자!’ 그것만은 확실한 듯 싶었다.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 걸고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소장처럼, 김동찬 소장께서 목숨을 걸다(?)시피했던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2015년 10월말, 메킨리에서 있었던 제17기 민주평통달라스협의회 1박2일 통일수련회에서였다. 그날 정오에 공적인 일로 그분과 함께 했던 나였기에 자초지종을 알만한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행사소식을 알아차리고는 중요성을 인식해서인지 다른 일정을 취소하는 것 같았다. 온 종일 강한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폭우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어 네비게이션이나 이정표는 무용지물이었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로 아찔한 위험을 무릅쓰고 몇 시간을 소비해가며 기꺼이 도착하였으니! 양복에 흠뻑 젖은 빗물을 털면서 따뜻한 미소로 일일이 손을 잡아주는데, 가슴 짠~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게다. 그때 수십 번도 더 되뇌었다. “책임감이 짱이시네! 매사에 헌신적으로 솔선수범하니 믿고 따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정을 듬뿍 안기신 그분께서 떠나신단다. 2012년 11월 달라스 출장소를 개설하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초대소장으로 취임한 지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란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진리,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나 보다.
근무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들을 여쭈어 보았더니, 당연히 출장소 개설을 으뜸으로 꼽았다. 황무지를 개척하듯이 장소선정부터 운영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키기까지의 과정 하나 하나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와 그 가족에게 평화의 사도증서와 메달을 수여한 일, 박찬호, 추신수 선수가 소속된 텍사스 레인저스구단 및 달라스한인회와 했던 ‘Korean American Heritage Night’, 동포단체가 힘을 합쳐 성공리에 마친 ‘Korean Festival’ 등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DFW는 미국 내에서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에, 동포들이 화합하고 역량을 결집하여 ‘달라스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동포들의 편의제고와 권익향상을 위해 출장소가 총영사관으로 승격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2, 3세들의 정체성 함양과 한글교육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자”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시련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달라스, 포트워스에서 바윗돌처럼 단단해진 김동찬 출장소장님! 이제 ‘소장’이라는 직함은 내려 놓으시고 머지않아 ‘중장’, ‘대장’, ‘총장’으로 승승장구하소서. 그래서 대한민국 외교의 수장으로 우뚝 서는 것은 물론, 제2의 반기문 UN사무총장으로 거듭나 한국을 빛낸 역사의 인물로 남으시길 충심으로 비옵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어디에 계시든 건강에 유념하소서.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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