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섰다. 길가의 모든 사람들이 공의 행차를 피해 길을 터 주었는데,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휘두르며 수레 앞을 막아섰다. 이것을 본 장공이 수행하던 신하를 불러 물었다.
“이 벌레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을 모르는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제 힘은 생각하지도 않고 적을 가볍게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자 장공은 “이 벌레가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 용맹한 사나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수레를 돌려 피해 갔다고 한다.
『장자』에 나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려주는 고사이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힘은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무모하게 덤벼드는 행동거지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당랑거철에 해당하는 우리말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하룻강아지’를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룻망아지 서울 다녀오듯’, ‘하룻비둘기 재를 못 넘는다’라는 속담들도 있어서 달리 생각해 보려고 들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 넘어가지만 이는 정확한 의미가 아니다.
‘하룻강아지’가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라면 이 속담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이상한 속담이 되고 만다. 강아지는 태어날 때 눈을 감고 태어나고, 일정하지는 않지만 태어난 후 약 2주가 지나야 눈을 뜨는 동물이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어 눈도 뜨지 않은 강아지가 범을 상대로 덤비는 것은 몰라서 하는 무식한 행동이지 알면서도 하는 무모한 행동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룻강아지’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 말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말이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또 발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의미가 바뀌는 것도 있고, 속담처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가 와전되기도 한다.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에서 와전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옛 사람들은 소나 개, 말과 같은 짐승의 나이를 셈할 때에는 사람과는 달리 ‘하릅, 이듭(두릅), 사릅, 나릅, 다습, 여습, 니릅, 여드릅(여듭), 아숩(구릅), 담불(나여릅)’과 같은 특수한 어휘를 썼다. 따라서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말로 보는데, 국립 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국어대사전에는 ‘하릅강아지’와 ‘하룻강아지’가 모두 표제어로 올라 있다. 다만 뜻풀이가 조금 다른데, ‘하릅강아지’는 나이가 한 살 된 강아지를 말하고,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강아지를 뜻하는 말로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만을 가진 어린 사람을 놀릴 때 쓰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갓태어나 눈도 뜨지 않은 하룻강아지보다 그래도 세상 물정을 좀 아는 하릅강아지가 범에게 덤비는 것이 무모한 행위를 비유하는 속담으로는 이치에 맞는 말이 된다.
물론, ‘하룻강아지’를 글자 뜻 그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멋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어린 강아지도 범을 무서워할 리 없기 때문이다. 옛 활자로 인쇄된 고소설을 보아도 ‘하로강아지, 하로아지, 하로개지’ 등과 같이 ‘하로’ 곧 ‘하루’와 짐승이 결합된 단어가 나오고, ‘일일지구 부지외호(一日之狗 不知畏虎)’라는 한자 속담도 있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일지구 부지외호’라는 속담은 중국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초생지독 불파호(初生之犢 不怕虎)’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갓 태어난 송아지 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우리 속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와 같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년견 불외호(一年犬 不畏虎)’나 ‘신생구추 부지외호(新生狗雛 不知畏虎)’와 같은 한자 속담도 있어서 이들 속담 속의 ‘일년견’과 ‘신생구추’는 ‘하룻강아지’가 본래 ‘한 살 된 강아지’를 뜻하는 ‘하릅강아지’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보면 ‘일일지구 부지외호’라는 한자 속담은 고유어 속담 속의 ‘하릅강아지’가 ‘하룻강아지’로 변한 뒤에 다시 한자로 번역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우리말에는 숫자를 셀 때에 대상에 따라 단위를 달리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생선은 두 마리를 한 ‘손’이라 부르고, 오징어는 스무 마리를 한 ‘축’이라 부르며, 북어는 스무 마리를 한 ‘쾌’로, 엽전은 열 냥을 묶어 한 ‘쾌’라 부른다. 이처럼 대상에 따라 단위를 달리 한 것은 실생활의 편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만큼 표현이 다양해지고 언어의 멋이 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수명과 동물의 수명은 차이가 많다. 물론 동물도 종류에 따라 수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똑 같은 1년이 주어졌더라도 동물과 인간에게 그 의미는 다르다. 10년 수명의 동물에게 1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사람에게 1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다. 동물의 나이를 셀 때에는 사람의 나이를 세는 것과는 다른 어휘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러한 뉘앙스를 좀 더 느껴보고 싶었던 조상들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오늘날에도 되살려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나간 유행이 다시 돌아오고 사라졌던 아름다운 옛 언어들이 다시 생명을 되찾은 것들이 많은데 짐승의 나이를 세는 단위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일까. ‘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살아나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이 단어들도 금방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관리형 홈스테이 기숙학사
elimedu@gmail.com|972-998-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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