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을 탈출한지 25일째 되던 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기적에 힘입어 홍해의 아카바만을 무사히 건넜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또 다시 황량한 산을 에두르는 끝없는 사막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애굽군에 쫓겼던 긴장탓에, 사막의 뙤약볕 아래 6일 동안은 정신없이 걸었다. 마라(Marah)-엘림(Elim)을 거쳐 새로운 광야, 즉 신광야(Wildness of Sin)에 도착하니 온 백성이 기진맥진이다. 연일되는 강행군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이내 온 백성이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이 터져나온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내여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이스라엘 자손들의 원망에 대한 응답으로, 더불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 낮에는 만나를 공급함으로 그들의 육체적 곤고를 채워 주었다.
신광야에서 7일을 숙영한 다음, 다시 행군을 재개한다. 이틀길을 걸어 호렙산(Mt. Horeb)으로부터 50km정도 남쪽에 위치한 르비딤(Rephidim)에 도착했다. 애굽을 떠나온지 41일째였다.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르다고 불평할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므로 물을 낸 곳으로 맛사(Massah) 또는 므리바(Meribah)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모처럼 평안히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생각치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여태까지 보지도 못했던 이방인,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아말렉 족속의 배경을 살펴보자. 야곱의 형 에서(Essau)의 후손들이 부족 단위로 지중해와 세일산(Seir) 사이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중 아말렉(뜻: 골짜기의 거주자)족속은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Eliphaz)와 그의 첩 딤나(Timna)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페트라(Petra) 일대의 골짜기내 동굴이나 장막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계절별로 초지(草地)를 따라 이동하면서, 때로는 타 부족에 대한 약탈도 서슴치 않는 호전적인 족속이었다. 어느날, 이 족속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탈출한 후, 홍해를 건너 자기들의 영역인 르비딤 땅에 진입하였다는 사실을 한 목동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다.
블레셋 족속과는 달리,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가까운 혈족(血族)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적지는 그들이 사는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땅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200여만명의 인구가 그들의 영토를 지나가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이 큰무리가 그들의 땅을 지나갈 때, 사막에서는 목숨과 같은 물, 그리고 귀한 초지의 손실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은 생존을 위해서 같은 혈족이라도 용납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페트라(Petra)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로부터 100km를 남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동을 사전에 차단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말렉 족속은 엄청난 규모의 인구, 또한 전투가능한 장정 60만명을 보유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하는 것이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무장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숫적인 면에서 결코 가볍게 볼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일까?
성경 기록에 의하면, 아말렉 족속이 선택한 공격방식은 배후를 강타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숙영지의 후방 취약부분을 교란하여 대오를 흩트리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여호와의 섭리를 거스리는 잘못된 방책이었다. 이 졸렬한 방책, 즉 후방타격으로 아멜렐 족속은 후일 이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운명을 초래한다. 여호와의 분노를 직접 들어보자: “너희가 (이스라엘)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 . .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 . . 그러므로 . . .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하늘 아래서 도말하라”(신25:17-19). 아마도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오랫동안 기독교 문명에 노출되었던 유럽은 결투 시 뒤에서 공격하는 것을 회피하였던 것 같다.
한편, 르비딤 255m 감제고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이스라엘 병사가 시내광야 북단에서 공격대형을 갖춰 남진하는 아말렉군을 발견한다. 4km정도로 근접하였고 1시간 정도면 도달할 것이라 모세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적의 척후병은 이미 도달하며, 이스라엘 자손들의 숙영지 후방지역 일대를 타격한다. 아비규환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모세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두려웠다. 자신이 인솔하고 있는 이 백성은 배고픔과 목마름만으로도 자신에게 거칠게 항거했다. 되풀이되는 기적을 보기는 하였으나, 현실 앞에 이내 그 영광은 사라져 버린다. 지금까지 이들의 소행으로 미루어 보건대, 만일 적의 공격에 직면하게 되면 겁에 질린 나머지 애굽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떼를 쓸 것은 불을 보듯하다. 그러나, 향후 가나안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전투는 그 시작으로서 잃어서는 안되는 중대한 일전(一戰)이었다. 모세는 전면전(全面戰)을 피하고, 장정 가운데에서 정예요원을 편성하여 적의 지휘부를 강타할 것을 계획한다. 일명 기동타격대를 급조한 후, 모세는 여호수와(Joshua)를 그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적 부대의 허리를 끊어 양분한 다음, 양 방향으로 적을 몰아 타격할 작전계획을 세웠다. 다시 말해, 고지대의 양편에 대기하였다가 아말렉 족속의 전부대가 계곡으로 진입하였을 때 중앙을 기습공격하여 적의 주공과 조공을 차단하는 공세작전이다. 이에, 여호수와와 그의 부대는 2제대로 나누어 르비딤 평원을 가로질러 적의 중심부를 돌파한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운다.
지금 이순간, 모세는 르비딤 평원 좌측 고지에 올라가 이 격렬한 전투를 관망하고 있다. 피말리는 마음에 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하여 손을 내리면 아말렉 족속이 우세하다. 모세조차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승패의 향방이 참으로 기묘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두 명의 동행자, 즉 아론(Aaron)과 훌(Hur)은 갑자기 모세를 돌위에 편히 앉히고, 각각 양편에 섰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내리지 못하도록 아예 그의 손을 양옆에서 부여 잡았다.
신적인 능력 앞에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여호수와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예부대는 대담하고도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발휘하여, 이방인과의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에게 대승리를 안겨주었다. 전쟁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보여준 전투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배후에서 이 전쟁을 지휘하신 그들의 신을 기묘자(The Wonderful Counselor)라 불렀다. 그리고 이 르비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는 나의 깃발’ (Yehowah Nissi)이라 호칭하였다. 지금도 이 전통은 이어져, 전쟁에 임한 모든 군대는 예외없이 부대특성에 맞는 고유의 기(旗)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부대기는 소속 부대원들에게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긍심과 사기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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