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l "괜찮아"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닌 슬초맘의 세대는 참 기죽을 일도 많은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의 학생을 성적 순으로 줄을 세우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학교 성적과 가정 형편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해 기가 죽는 학창 생활과, 사회에 나가서는 성별과 외모, 학벌과 외국어 능력 등의 온갖 ‘스펙’에 의해 평가되는 쓰디쓴 청춘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후. 그 수많은 상처의 응어리와 쓴뿌리를 품고 자라난 우리들이 이제 ‘부모’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모두는 이를 악물며 내 자식만은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아이가 자라서 루저가 되지 않도록 일찌감치 높은 스펙을 갖추어 주겠다는 그룹입니다. 최고이지 못하고 기죽고 자라야 했던 우리 부모 세대들의 낮은 자존감과 한이 느껴지는 그룹입니다. 이 그룹의 부모를 둔 아이들은 소위 좋다는 학교나 학원, 동네, 어학 연수, 조기 유학, 온갖 예체능 교육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한을 풀기 위해 쉼없이 달려야 합니다.
둘째는,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가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그룹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아빠들보다는 엄마들에게 더 많이 나타납니다. 네가 잘 하라며 아이만을 다그치는 첫 번째 그룹과는 달리 이 그룹은 부모인 스스로에게 완벽을 요구하며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가령 완벽한 태교, 출산과 육아, 지능 개발 교육, 먹거리…  부모 되기도 참 피곤한 그룹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자신이 겪었던 문제들이 자녀나 부모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시대적 교육 환경의 문제임을 깨닫고 대안을 찾아가려는 이들입니다. 한국에서 인성 교육이 가능한 대안 학교를 찾거나, 경쟁 교육이 아닌 진정한 인성 교육을 찾아 이민을 떠나는 이들, 미국에서도 대안 교육을 찾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그룹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러, 어느덧 슬초가 고등학생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저 세 그룹의 부모들과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슬초맘 자신을 바라보면 꽤나 한심스럽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 해도 너무했던 것 같습니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던 중 슬초를 갖게 된 것부터 출발해서, 태교는 무슨. 남들 다 한다는 동화책 읽어주기조차도 내 배에다 대고 혼자 무슨 구연동화 쑈냐… 싶어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쌀밥에 김치 구경조차 어렵던 곳에서 보낸 임신 초반과, 한국 음식이 넘치는 엘에이로 이사왔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했던 임신 후반, 그다지 반겨주는 이 없던 출산. 뱃골이 커서 모유는 커녕 분유를 두 병식 빵빵하게 먹어야 잠이 드는 슬초를 키우다 결국 실패한 모유 수유. 곧 이어진 슬초맘의 직장 생활. 덕분에 슬초 또래의 친구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당근과 샐러리를 간식으로 들고 지능 개발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우리의 문맹 소녀 슬초는 코를 찔찔 흘리며 빼빼로나 쭈쭈바를 들고 데이 케어와 애프터스쿨을 전전했습니다.
이도 모자라 조금 넉넉하게 살게 되었을 때 부모라는 사람들이 중간에 몇 번 크게 아프더니만, 삶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환경에 큰 변화를 주어 아이에게 문화적 충격도 주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8학년이 되며 이제 갓 자기 방이 생겼나 했더니, 이젠 엄마 아빠가 각자의 공부를 시작해 아이 학자금 준비는 커녕 자기들 등록금도 빚을 내고 허덕이며 살아갑니다. 우린 아무래도 구제불능 부모 같습니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라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 슬초맘. 덕분에 슬초는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서 대처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강인한 아이로 자라고 있지만, 슬초맘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부모로서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자리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무게는 특별히 아이만을 바라보며 헌신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헌신형 부모들을 바라볼 때마다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내 꿈을 위해 아이의 꿈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아닐까?
무거운 마음에 며칠 전, 밤 늦게 배구 게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슬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의 대답이 아주 쿨~ 합니다. “괜찮아! I know you did your best! (엄마 아빠가 최선을 다 했었던 거 나도 알아!)” 그리고 나직하게 엄마에게 참 의미있는 말을 해 줍니다. 엄마 아빠의 삶의 목적과 꿈이 딸인 자신의 성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괜찮아!” 그 한 마디에 지난 14년 동안의 마음의 부담과 무게들이 스스륵 사라지는 것이 말이지요.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은거야! 오늘 밤도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내어 봅니다. 그래도 괜찮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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