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살던 정든 집을 팔고, 남편의 취향대로 지은 새집으로 입주를 하게 되었다. 6번째 거주지였던 Frisco 집은 우리 식구 살기에 적당한 사이즈였다. 동네도 조용해서 좋았는데, 문제는 학교와 직장이 너무 멀다는 거였다. 게다가 2017년에 끝이 날 예정이라는 콜로니 길 공사로 몇 년째 교통지옥인지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옮기게 된 것이다. 이사를 한 후 학교와 교회는 5분 거리, 한인마트는 15분 거리, 남편의 출퇴근 시간도 30분은 족히 단축될 만큼 생활반경이 가까워졌다. 길에서 버리던 시간을 절약하니 막히는 길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Dallas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만 해도 이 도시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인생에 깊은 상처만 남겨 준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떠나 멀리 간다는 게 고작 차로 네 시간 걸리는 이곳이었다. 피붙이를 한 달에 한 번 얼굴이라도 보아야 하겠기에 더 멀리 갈 수도 없었다. 너덜거리는 육신과 입잘 것도 없는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올 때 나는 빈털털이였다. 다니던 직장의 지사가 있어 먹고 살 걱정은 덜었지만 살아서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도피해 온 땅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달라스에 와서 처음 살았던 곳은 Marsh Lane과 Belt Line 근처의 원 베드룸 아파트였다. 아파트 주민은 가난한 멕시칸과 흑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건물 쪽은 멕시칸이 더 많았다. 이따금 술에 취한 남자들이 문을 두드리고,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올 때면 공포가 느껴졌다. 가난에 찌들고 악에 바친 사람의 크고 높은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킹랏에 모여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조명 삼아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힘든 삶의 무게를 덜어냈다. 라틴 음악은 빠름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느낌이었다. 아파트는 바퀴벌레들의 천국이었다. 퇴근하여 불을 켜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던 벌레들.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놀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떴을 때 혼비백산하여 제집으로 튀어 들어가던 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바퀴벌레의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혼자만 약을 뿌리고 청소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바퀴벌레들과 동거를 하던 내 자신도 차츰 영혼 없는 벌레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방향을 잃은 삶은 그러했다.
백인들이 많은 쪽으로 가면 나으려나 싶어 Frankford로 이사를 했다. 바퀴벌레는 해결이 되었는데 벌레만도 못한 도둑이 현관 문짝을 떼고 들어와 돈이 될 만 한 건 깨끗이 쓸어 간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아파트 문짝은 힘 좋은 남자들이 발로 차면 힘없이 나가떨어진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벽과 벽 사이가 콘크리트가 아니라서 못을 지탱해줄 힘이 없었다. 세 번째 아파트에서는 뽑은 지 석 달 밖에 안 된 차를 도난당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가보니 세워 둔 차가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자동차 키도 없이 어떻게 가져갔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네 번째 아파트에서는 옆집과 위층의 이웃을 잘 못 만나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멀쩡한 방을 두고 거실에 매트리스만 옮겨 살다가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져 결국 캐롤톤에 작은 집을 사게 되었다. 둘이서 두세 잡을 뛰니 집세를 내고 살만했다. 집안에 살림살이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 아이가 태어 난 후였다. 짝이 안 맞아 그렇지 필요 한 게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사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의 캐롤톤 H-mart는 원래 ‘mervyn’s’라는 백화점이었다. 그곳이 내가 갈 줄 아는 유일한 쇼핑 장소였다.
7번째 이사를 하기 전, 우리는 대대적으로 짐 정리를 했다. 일 년 내 한 번도 입지 않거나 작아진 옷, 사용하지 않는 부엌살림, 쓰던 가구들을 모두 필요한 곳에 나누어 주었다. 많이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이삿짐이 많았다. 너무 많이 소유하고 살았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런 돈을 아껴 어려운 이웃과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렇게 분별없이 사 모으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7번째 집에서는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는 신명기 28장 6절의 말씀이 우리 가정에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1절의 말씀이 전제가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어쩐지 느낌이 좋다. 오늘은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집 내놓고 한동안 한국음식을 못해 사먹고 살았더니 집 밥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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