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효 (Collin College재학)
정장의 신사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길을 걷고 있다. 그 옆에는 신사보다 더 큰 해바라기꽃도 역시 축 처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희망조차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풍경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뭔가 다른 느낌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는 절망이 새로운 희망을 만든다는 역설적인 그림이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림 속의 ‘아버지’와 처진 꽃이지만, 한때 아름답고 환하게 피었던 ‘자신’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서른에 익숙한 것을 뒤로 한 채 낯선 이 곳으로 왔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단절이다. 뼛속까지 파고든 익숙한 것을 잊기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본인이 만든 습관일 뿐, 새로운 것을 꿈꾸려면 먼저 익숙한 것과의 단절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본의 그래픽전문대학에서 그래픽을 전공하고 그곳에서 현역으로 뛰었던 전문가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대기업에서 그래픽전문가로 일하며 비현실적인 환경에 그만 희망을 잃게 된다. ‘낙타가 무거운 짐을 싣고 죽음의 사막을 건너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짐은 낙타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낙타는 짐을 운반하는 짐꾼에 불과했다. 그녀는 낙타와 같은 현실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고, 새로 찾은 것이 그림의 길이었다. 화가가 되어 꿈을 그리겠다는 열망이 낯선 곳으로 오게 된 이유다.
그녀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림이란 새길을 내고 있다. 아직은 고르지 못한 길뿐이다. 곳곳에 둘 뿌리가 깊게 박혀 길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 고르게 나 있는 모든 길도 처음에 다 같이 고르지 못한 길이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그림처럼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천히 쉬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 꿈을 만나고 그 꿈 뒤에 있을 다른 꿈도 만나게 될 것이다. 꿈이 꿈을 낳는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체험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다.
지금은 꿈을 그리지만, 언젠가는 인생을 그리고 삶을 관통했을 숱한 흔적을 그리게 된다. 자신의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 그녀도 어쩌면 화가의 길을 두고 먼 곳을 회유(回遊)했는지도 모른다. 먼 훗날 화가의 몫으로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듬으며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은 손과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추적된 삶의 에너지로 그린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이루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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