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의 미술 스케치: +α 가 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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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그림에 대한 갈등과 맞물려 다가온다. 나는 없고 일만 있는 삶.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은 없었다는 아마도 그런 종류의 자책이나 갈등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작업공간을 정리도 하고, 이젤 위에 커다란 캔버스를 펼쳐 보지만 쉽게 붓을 잡진 못했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무엇을 스케치를 해야 할 지 막연해져서 멍하니 빈 캔버스를 바라보다가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화가의 꿈과 현실의 삶 사이의 틈새는 점점 벌어지는데 갭을 메울 만 한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열사람 이상의 몫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시월이 되면서 학생들의 방을 정리하여 내 작업실을 마련해 보았다. 입시생들의 수업공간으로 사용하였던 방을 정리하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누가 작업할 공간이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비춰진 내 모습은 미술학원 원장일 뿐, 내 안에 꿈틀거리는 그림을 향한 갈증이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내 자신보다는 제자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살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던 화가가 아닌, 미술 학도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도우미가 되어 화실 한구석에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작업을 지도하며 무한한 감동과 보람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내 그림에 대한 열망은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곤 했다. 
아직은 미비하지만 작업실을 만들고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새로운 꽃을 피워 보고 싶다. 나의 붓끝에서 탄생하게 될 각양각색의 꽃들로 채워질 공간을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나는 나만의 작업 세계를 꿈꾸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꽃은 내가 즐겨 그리는 그림 소재 중 하나이다. 뒤돌아보면 학교 졸업전이나 개인전, 그리고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을 할 때에도 꽃을 이미지화 한 작업을 많이 해 왔다. 남녀간의 일차원적인 사랑을 넘어선 모든 사람과의 사랑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일반적인 작업세계라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꽃은 많은 화가들에 의해 화포畵布 위에서 무수히 피어나 자연에서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못지 않는 매력을 여러 가지 형태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시절, 지도교수님의 작업실에서 실기 수업을 했던 때가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냥 들어서기가 멋쩍어 매주 꽃을 사다 화실 한 켠에 꽂아두곤 했다. 화병 가득한 꽃을 보며 교수님께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인데,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을 왜 그리도 좋아하느냐”고 묻곤 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이 꽃을 작업소재로 삼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봄 꽃은 가을꽃과 사랑을 나눌 수 없단다. 피어나기 무섭게 시들어버리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기가 무섭게 빛이 바래는 것이 싫어서 나는 꽃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하시며 꽃과 깊은 사랑을 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장난스레 건네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지만 여전히 나는 꽃을 좋아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60을 목전에 둔 교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사이도 없이 쉽게 시들어버리는 꽃이 인생의 시간대로 축약돼 보여 그러셨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게도 꽃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 유난히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나이가 오려는지 교수님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래서 생화 그리는 것을 꺼려하셨나 보다.’ 혼자 중얼거리며 말이다. 
천재 화가 빈 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해바라기’는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려졌다고 한다. 반 고흐에게는 태어나자 마자 죽은 형이 있었다. 자신에게 붙여진 빈 센트라는 이름은 바로 그 형의 이름이었다. 그는 어느 날 형의 무덤가에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보게 되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노란색에 반하여 그때부터 그의 모든 작품에 노란색이 등장하게 된다. 
고흐는 형 빈 센트가 해바라기로 다시 다시 태어났다고 믿고 싶어 해바라기를 그림으로 제작하여 평생을 함께 했다고 고백했다. 고흐에게 노란색은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죽은 형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던 고흐의 삶 역시 태양을 사랑해서 태양만을 바라보다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해바라기처럼 외로움 자체였다. 오늘날까지 최고의 정물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바라기’는 감상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실어주는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의 문턱이다. 내게는 어떤 꽃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까? 해바라기가 고흐에게 영원한 생명과 희망을 안겨주었듯, 그렇게 커다란 존재는 아닐지라도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도 나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하기에 충분한 꽃이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켓에 들려 꽃을 한아름 사야겠다. 그 꽃이 시들기 전에 캔버스로 옮겨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닌 플러스 알파의 꽃으로 탄생할 것이다.

문 정
MFA. Academy of Art University San Francisco
The 8th university (Universite, Paris-VIII)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조선대학교 미술 대학원
국립 목포대학교, 광주 교육대학교, 국민 대학교 강사 엮임
개인전 3회 및 국내외 그룹전 및 공모전 다수
현) 드림아트 미술학원 원장, H Mart 문화센터 원장
Tel. 469-688-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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