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 잡스, 그 나물과 그 밥 속에 살아있길_이준열 편집국장

“전쟁은 언제나 지난 마지막 전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자들이 패배한다”는 말이 있다. 이전 싸움에서 교훈을 얻어 깨우쳐 다음번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다면 또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이 모습이 현재 한국의 야당 모습이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새정치민주당의 모습에 오버랩되는 게 있다. 하나로 뭉쳐 결전을 대비해야 할 때쯤 보여주는 지리멸렬, 사분오열,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과 결집력 누수 등.
탈당한 안 의원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이다. 한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는 저서와 방송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러니까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타입인 거죠”라고. 과연 그럴까. 
물론 탈당하면서 일갈한 말들은 나름 뼈아픈 자성의 언어다. 혁신이 없는 정당이라며, 운동권 정당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은 새겨볼 말이다. 진실한 정치인들이 시대에 부합하는 이념과 방향성을 갖고 정권 창출의 비전을 보여줘야 할텐데, 단지 강성 데모로 무장된 자들만 득세하는 당이라는 비난이다. 안 의원으로서는 설 자리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사실 운동권 정치인의 자화상은 일그러졌다. “삶은 개인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면서도 의식은 언필칭 진보에 머물고자 하는 위선이 구조화된 군상들”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있다. 안 의원은 진정한 개혁의 무리라면 그 삶에서, 행동에서, 방향성에서 보여주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볼 수 없었다고 자탄했다. 
어차피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라는 영국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대로라면, 그 목표를 향한 뼈를 깎는 변화와 개혁의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할 것이다.
안 의원이 탈당의 변으로 스티브 잡스를 거론한 것은 나르시즘에 불과하다. 자신의 뜻이 좌절돼 쫒겨나다시피 그만둔 애플에 12년 후 재합류해 지금의 애플로 성장시켰던 잡스다. 잡스 자서전에 안 의원의 추천사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대학도 그만둔 이가 어떻게 영웅이 되었는가. 그것은 천재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 때문이었다. 그의 진정한 재능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것에 고도로 집중하는 열정이었다.” 자신도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슬쩍 버무려 보려 하지만 아무도 그 정도로 보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 의원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후배가 그의 회사에 다닐 적에 당시 안 사장을 우러러보는 말을 하는걸 들은 기억은 있다. 한창 인기 절정이었을 때 누군가 회남자에 나오는 “두 마음으로는 한 사람도 얻을 수 없지만 한마음으로는 백 사람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당시 안 교수를 치켜세운 걸 본 적은 있다. 솔직히 정치가로 나서지 말고 교수든, 연구자든, 의사든 그냥 있길 바란 사람의 하나가 나다.
정치에 있어서 제갈량 같은 지략가가 나오길 바라는 심정은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그래서 안 의원 같은 이가 부상했을 때 혹시나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실망이 더 큰 게 정치판의 현실이다. 사실 제갈량 같은 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기대할 순 없다. 그런 인물 출현이 성사되려면 그 숱한 기간에 정치적 분위기와 판세가 형성돼야 한다. 변화와 개혁을 이끌 인물이 능력을 발휘할 판이 깔아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혁을 반짝 인기나 값싼 정서로 하는 게 아니라 정책과 경륜으로 하게 해야 한다.
정치적 고수가 그립다는 말이기도 하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고수의 덕목을 보자. 덜 숙련된 사람은 분주하기만 할 뿐 어수선하지만 고수는 무게가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태산같은 신중함과 대안이 있어서 위기를 벗어난다. 또 다른 중요한 덕목은 진중함이다.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쓴다면 훌륭한 장군은 아니다”라는 강태공의 말처럼.
나폴레옹을 이긴 웰링턴 장군이 “패전 다음으로 슬픈 건 승리한 전투다”고 말한 심정을 지닌 자여야 한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걸 즐긴다면 최고가 아니라는 손자의 말과 같다.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세상을 위한, 세계와 인간, 그리고 백성을 위한 소신이 먼저여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 자여야 한다.
멀리 한국에서, 그리고 이곳 미국과 달라스 한인사회에서도 정치계 스티브 잡스만한 고수가 나오길 항상 바라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리를 듣는 정치판에서 미래를 보고 혁신과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다운 인물이 한 명이라도 비벼지고 있길 바란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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