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6_슬초맘

슬초맘, 요즘 주말이 꿀재미입니다. 바로 주말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때문입니다. 좀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는 슬초맘이지만, 이 시리즈만큼은 빠지지 않고 챙겨 보게 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꿀재미는 드라마이지만 당시의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나타냈다는데 있습니다. 특히나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카세트 테이프, 마이마이, 물빠진 청바지와 같은 깨알 재미의 추억의 소품이 등장할 때마다 슬초빠와 함께 무릎을 치며, 추억에 젖곤 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배경이 된 연도에 따라 <1997>, <1994>, <1988>로 나뉩니다. 그런데 슬초맘에게 이번 <응답하라 1988> 편이 가장 감칠나고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슬초맘이 바로 그 시대에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밤낮 학교에 갇혀 있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중학교 때에는 아무 생각없이 잘도 놀았었기에 각종 다양한 추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1988년이라… 어느 누군가에게는 88년 올림픽과 굴렁쇠 소년의 기억뿐일 수 있겠지만, 슬초맘에게는 참으로 다양한 기억이 남아 있는 한 해입니다. 먼저는 ‘신당동 떡볶이집’입니다. 당시에 다녔던 중학교가 신당동에 가까운 곳에 있었고, 또 친구 중 한 명이 유명한 원조 떡볶이집 막내딸이었던 터라 친구들과 함께 그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가락이 오글거리지만, 당시엔 떡볶이집들마다 유리로 된 디제이 부스가 있었고 그 곳에서 잘 생긴 디제이 오빠들이 신청곡을 틀어 주곤 했더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디제이 오빠들을 보러 이 떡볶이집 저 떡볶이집을 순방하며, 떡볶이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던 주말이 생각납니다.
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만화방입니다. 당시 만화방에 다니는 학생은 불량 청소년이라고 해서 학생 주임 선생님이 만화방 주변에서 잠복을 하시는 바람에 허구한 날 붙잡혔던 기억, 그러다 꾀를 내어 학교에서 만화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 책을 몇 십권씩 빌려 야간자율학습 때 몰래 돌려 보면 기억도 있습니다. 학교 가는 제 가방에 만화책만 가득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연예인을 쫓아다니던 기억입니다. 슬초맘의 경우,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나위라는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씨의 팬이었더래서 시나위라는 그룹을 정말 열심히 쫒아 다녔는데, 당시 신대철씨 옆에 있던 가수 김종서씨나 날라리 같던 무명의 베이시스트 서태지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더랬습니다. 그 때 그들이 무명이었을 때 싸인이라도 하나 받아 놓을 걸이라고 가끔 후회를 하곤 합니다만. 
1988년을 떠올릴 때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매캐한 최루 가스의 기억입니다. 다니던 중학교가 하필 대학교들 사이에 위치했었던지라 최루탄 냄새야 익숙했다지만, 동국대학교와 장충단 공원 앞을 걸어서 집으로 와야 했던 시간들은 참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온갖 외침과 구호 속에서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최루탄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사이를 뚫고 걸어 와야 했던 어느 날은 바로 눈 앞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바람에 놀라서 옆에 있던 공중전화 박스 속에 숨었는데, 하필 그 때에 데모데와 진압 의경이 함께 맞붙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전화 박스 속에서 울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2015년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장면들, 특히나 시대역행적인 쇠파이프와 차벽, 캡사이신 물대포의 등장은 ‘응답하라 1988’ 드라마보다도 더욱 그 시대를 떠오르게 합니다. 자신들의 수많은 질문과 의혹에 대해 ‘응답받지’ 못한 이들의 외침. 87년 6월의 명동을 목격한 슬초맘에게, 2015년의 조국의 모습은 돌아가려는 이들의 외침과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들의 외침 속에 끝까지 응답하지 않으려 버텼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머나 먼 조국의 2014년에는 세월호라는 가슴 먹먹한 기억이 새겨졌고, 그를 이은 2015년은 캡사이신이라는 매캐한 기억을 새기며 비겁하게 퇴장하려는 것 같습니다. 조국의 뉴스만 보아도 손쉽게 돌아갈 수 있는 우리의 1988년, 답답한 마음에 외쳐봅니다. 응답하라 2016년. 너만은 반드시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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