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누구인가. 대형 살상을 해서 세계를 정화시킨다고 믿는 자들이다. 자기 종교를 ‘칼의 종교’라고 믿고, 목 베는 참수용 칼을 종교 상징 기념품으로 판다. 그 칼로 반대파들을 말살하는게 삶의 최대 헌신이다. 그들 지도자는 말한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피 흘리는 모습이 나에게는 기쁨”이라고.
그들이 베이루트에 이어 프랑스 파리에서 무자비한 테러를 저질렀다. 129명이 사망하고 350여명이 부상당했다. 그들에게 살해되는 테러 사상자는 갈수록 급증한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느끼는 위협과 공포, 절망감과 슬픔은 그만큼 비례해서 증가하진 않는다는 것. 테러리스트에 의해 1명이 참수 당했다는 뉴스에 떨리던 감정이 129명 테러 사망 기사에 129배로 안 늘어나니 말이다. 테러범들의 만행은 그 의지와 목적이 사망자 수만큼 배가되지만 우리는 무뎌져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게 폭력, 테러, 전쟁이 갖는 못된 ‘자부심’이자 ‘갑질’이다. 폭력이 거세질수록 무서워하기만 할뿐, 즉각 대처하지 못한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도 이번 테러 징후나 경고를 포착 안한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톨레랑스, 즉 관용의 나라답게 참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물론 “테러 발생 후 파리는 어두워졌지만 세계는 파리를 위해 불을 켰다”고들 말한다. 미국도 IS 격퇴를 외치고 세계도 이들에 대한 응징을 선언하고 나선 덕분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당장 지상군을 파견해 이들을 섬멸할 리는 없다. 이미 베트남전에서 그 부정적 결과를 겪었던 미국이다. 무려 6만여명의 미국인을 희생시키고도 사실상 패배한 전쟁이었다. IS에 제대로 한방 먹이려면 지상군이 최소 3만은 필요하다는데, 적을 의미있게 잠재울 수 있으려면 그 때까지 미국인을 포함한 희생이 얼마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적을 얕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베트남전 미국 총사령관이었던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베트남전에서 우리는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 말은 전투에서는 다 이기고 막상 전쟁에서는 졌다는 회환의 말로 들렸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도 “나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판단 착오를 했다. 베트콩의 불굴의 의지를 과소평가했고 미국인의 인내력을 과대평가했다”고. IS를 상대로 이런 판단 착오를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실제 IS를 위해 싸우는 청년들은 ‘순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주류사회에서 소외돼 차별받는다는 좌절감으로 ‘외로운 늑대’가 돼버린 이들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따로 없다. 테러로 살인을 하는 게 최대의 행복이자 보상이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잔학한 테러전을 벌이는 집단이다.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
‘전쟁의 역사’를 쓴 버나드 로 몽고메리도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잔혹성, 야수성을 적으로 삼는다”고 했다. 타고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이 바뀌지 않는 한 IS 테러리스트들은 이 잔혹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라틴어로 ‘이방인’이란 단어는 ‘적’으로도 표현된다. 자기와 다른 이방국, 이방 민족, 이방 종교는 없애야할 적대적 대상이 되는 게 인류 역사요, 테러리스트들의 명분이다. 그들에게 다른 삶이나 목표는 없다. 그저 적을 살해하고 그로 인해 영웅이 되는 길밖에.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최대한 방어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내 나라, 내 도시, 내 옆에 그런 테러리스트들이 잠입해 있지 않게, 있어도 발각해 사전 방지하게 깨어있는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제대로 신원 파악도 안한 채 받아들인 난민에 대한 거취도 추적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테러리스트들의 인프라는 갈수록 강하고 치밀하게 구축돼가고 있는데 방어 상태는 원시적이고 한심하니 우려된다.
테러와 폭력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문제 해결이나 주장을 그 방식으로 하려는 또 다른 야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파리 테러 즈음에 광화문에서 열린 불법 폭력 시위, 복면 시위로 돌멩이와 쇠파이프 흉기가 난무해 경찰차, 공공기물이 파괴되고 경찰이 피를 흘렸다. 그건 아니다. 그렇게 “세상을 뒤집겠다”고, “이제 몸으로 때우는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는데 대체 누구를 위한 투쟁일까 두렵다. 폭력 자체보다 폭력을 쓰게 만든 환경을 탓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어이없다. 폭력 쓰는 이들치고 핑계없는 무덤없다. 파리를 공격한 IS에게도 물어보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테러는 정당하다고.
아니다. 단연코 정당한 테러도, 선한 폭력도 없다.
<이준열 편집국장>
|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