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공화국 대우조선해양. 금수저들의 돈 잔치죠. 우리 같은 협력업체 직원 흙수저들이 감히 뭘…”
한국의 기사 내용이다. 이젠 태어날 때 무슨 수저를 물고 나왔는지를 묻는다. ‘수저 계급론’이 한국에서 횡행한다. 연예인이든, 재벌이든, 정치가든, 특정 직업 세계든 여기저기 금수저 논란이다. 있는 자들, 부모 잘 만난 자들, 기득권을 갖고 사는 자들에 대해 ‘갑질’에 이어 ‘금수저’ 계급장까지 달아줬다. 하긴 청년 5명 중 4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힘들다’고 포기한 상태다. 금수저는 아니어도 최소 은, 동수저는 물고 태어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나무수저니 흙수저니 변수저니 그런 건 물고 나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체념이 줄을 잇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고 꼬집은 미국의 한 스포츠인, 좋게 태어난 건 그렇다쳐도 갑질이나 금수저 짓은 하지 말라는 충고로 들린다. 저절로 더 주어진 것 누리는 그 자체는 부럽지만, 그래서 특별하다거나 더 잘낫다고 여기는 건 자제하라는 충고 같다.
부모로부터 받은 게 없거나 좋지 않아 평생 성공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에 대한 설득도 없지 않다. 인간의 의지적 활동으로 유전적 요소를 희석시키고 얼마든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은 주위에 좋은 부모 유전자 받고도 인생을 망친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옛 위인들도 끊임없이 전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한 사람에겐 승리가 있다”고 희망을 말했다.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며 노력과 기회를 강조한 위인은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폴레옹도 그랬다. 시도해보지도 않고는 누구도 자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그러나 요즘은 이런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의 무게, 물려받은 콤플렉스의 하중에 아예 몸과 정신이 제대로 짓눌린 자화상뿐이다. 오래 허리를 굽히고 무릎꿇고 산 사람은 제대로 펴고 일어나 앉으려면 언제나 찢어지는듯한 근육의 고통이 수반된다. 문제는 이 고통이 싫어서 차라리 그냥 이렇게 엎드린 채 살겠다는 회피 정신이 만연하다는 것. 그게 사회든 자기 자신이든 제대로 바꿔보려고 하는 과정은 반드시 고통이 수반되는데 ‘그냥 놔둬, 이대로 살다 가게’를 내건다. 집단적 비관증의 전염병이다.
컴퓨터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개발한 페르손의 이야기를 보자. 수조원을 벌어들인 그는 36세에 벌써 7천만달러 ‘궁전’에 산다. 하룻밤 파티에도 수십만달러,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한다. 그런데 그는 호소한다. “엄청난 부(富)가 나를 극도로 외롭게, 의욕도 없게, 의미 있는 관계도 맺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그의 문제는 계속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는데도 이렇게 외로웠던 때가 없다고 말한다. “나와 친해지려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걸, 돈으로 친구나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는 것. 이게 겉은 반짝이지만 안은 곪아버린 금수저의 진실이다.
여지(餘地)라는 말을 생각한다. 남는 땅이고 약간의 간격이고 최소한의 남김이다. 각박해지지 않게, 쫓기지 않게,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게 여백을 두는 것이다. 나와 남에게 주는 여유다. 사실 우리가 벼랑을 걷거나 밧줄을 타라 하면 자꾸 불안한 것은 옆에 여지가 없어서다. 사람이 발을 딛어봐야 얼마나 큰 땅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도 여지가 없으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곳에서도 흔들리고 자빠진다.
그건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여지가 없는 사람은 남의 말에 귀기울지 않는다. 자신에게 여지가 없으니 남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환경과 주변에 대해 여유가 없으니 절망과 불만뿐이다. 사실 욕망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가져보면 아무리 궁색한 삶의 길이어도 거뜬히 걸어나갈텐데.
그래서 기형도가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남겼던걸까.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가을에 서서 새 희망을 바라며 이성복이 ‘그 여름의 끝’을 쓴 이유일 수도.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그 여름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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