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에 남겨진 여기자의 이름보고 흔들린 이유

최근 달라스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과 자살의 비극 사건, 그 주인공은 50대 백인 부부다. 남편은 화이트락 호수에서 조깅을 하다 정신분열증의 흑인 청년이 휘두른 망치에 맞아 죽었다. 일면식도 없는 관계인데 매일 운동삼아 달리던 곳에서 참변을 당했다. 말 그대로 재수없이, 우연히 그곳에 있다 피해자가 됐다. 
피해자에겐 자녀는 없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있었다. 그 아내는 남편의 죽음 후 2주만에 자살을 한다. 남편 없는 세상은 살 길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였다. 남편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서, 그리워해서 시종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하던 그녀였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남편을 죽였는지조차 알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직 자신의 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사랑만을 기자에게 하소연했었다. 
자살 전 그녀는 달라스 모닝뉴스의 여기자 이름을 적은 메모와 부부 사진을 남겼다. 남편의 죽음 뒤 그녀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취재를 한 건 그 기자가 유일했다. 죽음을 앞두고 남기고 싶은 이름일 수밖에. 
그런데 유서처럼 짧은 메모에 자기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된 여기자 마음은 어땠을까. 그 여기자는 신문에 장문의 글을 썼다. “그녀가 유서에 내 이름을 거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순간 기자로서의 그 어느 냉정함도 다 잃고 말았다”는 주제다. 
그러나 그녀는 자조한다. “당시 나는 그녀 남편 살해 사건 취재 차 갔을 뿐이고, 또 그 내용을 기사화했을 뿐이다. 그녀 아픔까지 절절히 파악하진 못했다.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자니까.” 
그런데 죽으면서 그녀는 그 여기자를 찾았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자는 또 자탄한다. “나는 그녀를 만났을 때 경찰처럼, 의사처럼 피해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무심함을 유지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일 뿐이었다”고. 
그런데 며칠전 만나 이야기하고 손 잡고 어깨를 도닥거려준 그 사람이 시신이 됐다니. 여기자는 흔들렸다. “나는 한동안 멍했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여기자가 다음 취한 행동은 뭐였을까. 그녀의 자살을 확인한 뒤, 그걸 다시 담담하게 기사로 쓰는 일이었다. 여기자는 또 자조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
여기자가 표현한 기자나 언론인으로서의 무심함, 그것은 아전인수격으로 말하면 중립이나 중용, 균형일 수 있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관계 내지 금권에 의해 휘어지지 않고 팩트와 정보만 올곧게 전달하겠다는 냉정함. 이를 집중무권(執中無權)으로 말한 사람도 있다. 저울의 가운데를 잡으면 양쪽 추가 필요없다는 말이다. 중심이 올바르면 그 어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할까. 또는 중용을 취하면 그 어느 좌우 사상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기자의, 또 언론의 역할이 뭔가를 재고해봤다. 한국의 험난한 신문 현실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며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한 계간지의 생존 이유가 와닿았다. “계절마다 한번 정도 좁은 소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성마른 광기가 지배하는 이 불길한 시대의 속도를 얼마간은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말. 
1주일이든, 한달이든 아니면 계절이든 계속 글을 쓰고 잡지를 편찬하는 역할, 그건 양극단을 향한 속도에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극으로 치달아 탈선하고 추돌하는 걸 막아줄 균형을 제시하는 정도랄까.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라던 김지하의 말처럼 언론의 글도 그래야 할게다. 어둠에 대해 쓰되 어둠을 조장하고 그 어둠에서 널뛰기보다는 그 어둠의 색을 지워보려는 작은 노력의 몸짓이 글로 구현돼야 한다는.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은 실은 자신을 구원해주는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울어야 할 때도 같이 울기보다 동떨어져 메마른 글을 먼저 써야 하는 일을 맡았다. 감정과 감상이 앞서기 전에 이성과 냉담함을, 거리감을 먼저 내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마치 강제로 문닫은 상점의 ‘Closed’ 사인처럼. 
펑펑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달라스 모닝뉴스의 여기자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보낸다. 양 끝의 금권 자락을 붙잡고, 자의든 타의든 억하심정 담긴 글로 못난 몽둥이 휘둘러 남을 치겠다는 양아치 감정을 남발하는 어둠의 조장자 지역 글쟁이들에게도. 
남보다 잘났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런 생각도 없다. 별반 차이없는 주제들인데 대리전하듯 감정 소모, 글 소모, 지면 소모하느라 갈 길을 잃어버린 우리 모든 매문인(賣文人)들을 같이 애도할 뿐이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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