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판에 때 아닌 안심번호가 핫 이슈다. 국회의원 공천에 도입하자는 주장과 반대가 맞섰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어렵다. 대통령마저도 “이렇게 복잡한 걸 국민들이 원하겠느냐”며 반대했다. 문제는 복잡해서가 아니라 정치판이 이제 이걸 필요로 할 정도로 혼탁해졌다는데 있다.
후보 뽑는데 전화로 여론 조사하면서 발생한 부정들 때문이다. 특히 유선전화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구멍’이 너무 많았다.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 모 정당에서 결번인 번호 200여개를 수집해서 자기 사무실에 전화를 설치했다. 휴대전화에 신호가 뜨도록 하는 착신 전환도 했다. 결국 그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에 자기 표로 응답을 한 것이다. 여론 조사를 조작한 짓인데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일반인의 전화번호로 여론 조사를 할 경우 휴면 처리된 번호를 모아서 재개통한다든지, 1인이 수백개 전화 개통을 한다든지 해서 여론 조작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 전화번호 공개로 신분이 노출되는 불안도 있었다. 이런 부정을 막아보려고 궁여지책으로 들고나온 게 안심번호다. 선관위가 유권자 개개인의 휴대전화에 별도의 임시번호를 부여한다. 개인 번호가 아니어서 신분 노출 방지는 물론 조작에 이용 당할 리 없다는 것이다. 각 정당에 제공된 이 안심번호로 여야가 전화를 해 여론조사를 해서 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평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반대측은 응답율이 낮을 수 있고, 이 또한 얼마든지 허점이 있어 또 다른 부정을 야기하는 꼴이 된다며 그냥 전국민 경선제로 하자고 주장한다. 유권자가 직접 나와 표를 찍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투표 참여에 귀찮아하고 또 편리를 추구하다 보니 앉아서 응답하는 전화번호 여론 조사가 도입됐을 것이다. 나름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더 많은 참여와 공정함을 유지하겠다고 표방했지만 오히려 부정과 혼동만 가중시킨 꼴이다.
또 다른 조작이 한국에서 연일 화제다. 서울 시장 아들의 허리 디스크 군대 면제 MRI 재검에 대한 것이다. 이미 한차례 시비가 붙어 세브란스 병원에서 찍었던 MRI 사진으로 해결되는 듯 했지만 그것도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번 검증했으면 됐지 왜 또 물고 늘어지는지, 정치적 공세 아니냐는 말도 일리가 있다. 단, 의사 등의 전문가들이 뭔가 의심스럽다며 제기한 의문점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시시비비를 한방에 떳떳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한번 더 공개적으로 아들의 MRI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모든 억측과 공격 및 음해를 한번에 날릴 수 있다. 그럴 의향이 없다는 아버지의 의중은 아직 짐작키 어렵긴 하다.
아들의 신체 구석구석까지 검증받아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한국의 정치인 자리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못 올라가 안달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 한국 의원 수는 미국의 영토나 인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국 의원 수 몇배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작은 나라에 뭐 다스릴 게 많다고 의원들만 왕창 뽑는걸까. 더구나 나라나 국민을 위한 일보다는 부정과 부패, 정쟁에만 골몰하는 ‘정치꾼’도 적지 않을텐데.
영국의 정치평론가가 “정치 외엔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국회에 들어간 의원이 너무 많다. 그러니 의정 활동이 편협하고 유치해진다. 인생 경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게 하면 안 된다”고 자국 의원들에 대해 개탄했다는데 남말 같지 않다.
국민의 고충과 애환을 알고 해결하기 위한 의원직인데 그런 걸 겪어보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한 이들이 돈으로, 부정으로, 또 인맥으로 한 자리씩 차고 앉아 있다. 그들을 향한 건 대중의 경멸 뿐. 미국 언론인 윌리엄 허스트가 “정치인이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애국자인 척도 한다”며 그 위선을 꼬집은 이유다.
달라스 이민 한인사회도 한인회장을 비롯해 지역 ‘장’들을 새로 뽑는 시기가 왔다. 이곳에서도 선거 때마다 크고 작은 부정과 꼼수는 있었다. 후보 관련 음해나 여론몰이용 행태도 존재했다. 한국에 비해 안심번호를 써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정은 있었다.
바라는 바는 그런 ‘장’ 하겠다고, 또 하게 되면서 인간이 이상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안심은 된다. 규모가 작은 한인사회라 대충 여론 수렴하면 위선자는 솎아내고 안심할만한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게 아주 불가능해 보이진 않아서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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