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과 송곳, 나이들어 뭘 먼저 챙기는게요


미국 영화 ‘인턴(The Intern)’이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인기인 모양이다. 쟁쟁한 한국 영화들을 제치고 뒤늦게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역주행을 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후기나 리뷰도 많이 올라온다. 얼마전 한국 드라마에서 임시직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린 ‘미생’이 한참 세간의 화제였는데 ‘인턴’은 그와는 다른 시각의 임시직을 그렸다.  
여기서의 인턴은 70세 노신사다. 이미 충분히 일하고 은퇴한 노인이 30대 여성이 창업한 이른 바 신세대 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해 벌이는 ‘노익장’ 스토리다. ‘황혼 판타지’라고 할 정도로 70세 노인 인턴의 역할을 멋있고, 자랑스럽고, 또 아름답게 그렸다. 현실에는 없는 그런 환상적인 역할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체 어떤 노인의 모습이기에 그럴까.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기품과 연륜을 더한 노년의 모습이다. 젊은 여성 CEO가 감정적으로, 경영적으로 좌충우돌하는 걸 옆에서 다독거려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숙련을 보여준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세상을 지배한다 한들 경험과 숙성된 삶에서 얻어낸 깊은 통찰력과 통제력은 연륜을 못 따른다는 일침이랄까. 앞만 보고 달리다 찢기고 무너지고 남을 찔러대며 제어안되는 젊은 후배들의 질주에 고삐를 매준다. 
미국식 노년의 면모도 엿보인다. 한국적 노년의 울부짖음과는 다른 여유와 자신감이 배여있다.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진 ‘은교’에서의 70세 노신사는 한국적 노인의 대명사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며 노욕(老欲)을 항변하는 그 추레함과 안쓰러움.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우린 아직 안 죽었다고 외치지만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반면 인턴에서의 미국 노인은 당당하다. 그리고 배려와 친절이 넘친다. 쓰지도 않는 손수건을 매일 잘 다려서 챙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거야”라며.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리뷰하는 사람도 있다. 어른되기 힘들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사실 제대로 된 노년이라면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일할 처지도, 젊은 인턴처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절실하게 일할 이유도 없다. 새삼 리더로 단체나 조직을 이끌 부담도 없다. 대신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진중하게 지켜볼 수 있기에 올바른 판단과 혜안을 갖게 된다. 즉, 어떤 위치에 서있는 노년이냐에 따라 그로부터 나오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진짜 어른스러움이 될 수도, 아니면 ‘꼰대’적인 간섭이나 투정 내지는 억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혜나 연륜이 나이 먹는다고 당연히 따르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다. 나이는 먹을대로 먹었는데도 여전히 미숙하고 배려없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변에서 보게 되지 않는가. 머리는 희었는데도 전혀 무르익지 않은 인격, 그리고 구부러진 허리마냥 비뚤어져버린 매너와 사고방식. 
영화에서 나오는 노인은 유머 감각이 있고 친화력이 넘친다. 자신이 나서서 뭘하려고 설쳐대기보다는 뭘 하지 않아야 할지를 더 잘 안다. 남을 불필요하게 공격하거나 험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고 사납게 굴지 않는다. 말을 잘하는 척, 자기 주장으로 무조건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반면 들어주는데는 열심을 낸다. 그렇다. 우리의 고민 대부분은 남의 잘난 체 하는 가르침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옆에서 충분히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그리고 잘 다려진 손수건을 빌려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민 한인사회도 고령화되는 추세다. 특히 1세대는 노인화된 지 오래다. 손수건을 챙긴 어른들이 가정에, 회사에, 단체에, 사회에 넘쳐날 시기가 된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남을 찔러대는 송곳부터 챙기고 나오는 이들이 더 많기에 말이다. 곱게 늦지 못하는 이들, 아예 남 비방과 욕설을 입에 물고 사는 듯한 이들, 같잖은 과거 자랑과 자기애, 남 잘되는 거 시기하고 배아파 어떻게든 뒤에서 찔러서 흠집을 내야만 속시원해지는 이기심으로 늘어나는 나잇살. 
나이들수록 우리는 거울이 필요하다. 남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 사실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남 뭐라 하기 힘들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으니. 고로 어줍잖게 남 가르치거나 찔러대려고 개거품 물기 전에 무릎 꿇고 자신을 반성할 것이다. 되지 않게 명분없이 날세운 송곳 들고 설치기보다는 남 닦아줄 손수건을 챙겨보려 할 것이다. 그게 어른다운 어른이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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