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l 2세 교육

'재벌 2세' '재벌 3세'라는 표현에서나 나오던 '1세', '2세' 라는 단어들을 이민 사회에서는 꽤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민을 온 연령에 따라 1세, 2세, 그리고 소위 1.5세라고 구분하여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 온 슬초맘은 오리지날 1세, 중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슬초빠는 소위 1.5세, 미국에서 태어나 8학년이 된 슬초는 오리지날 '2세'입니다. 이민 온 덕에 졸지에 서양 왕족에게나 붙이는 1세, 2세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위 ‘2세’에 대한 교육 철학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교육 철학이래봤자 "고양이는 고양이로 키우고, 강아지는 강아지로 키워라!"가 전부인 단순한 슬초맘, 이거 내가 소위 '2세 교육'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 이런 저런 소리들에 귀를 좀 기울여 봤더랬습니다. 그러자 바로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뛰어난 미국인으로 키우기' 라는 구호가 들려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민 1세대인 내가 풀 수 없었던 한을 자식이 대신 풀어주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구호로 들리는 것은 슬초맘의 약간 삐딱한 성향 때문일까요? 주로 이런 구호를 외치던 한인 부모들이 자식의 대학 진학과 스펙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며 통제하는 모습들을 보아왔고, 또 그런 아이들의 경우 때로는 한국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뛰어난 ‘미국인’이 되지 못하고 소위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채 이민 2 세대로서의 나름의 삶을 살게 될 소위 ‘2세’ 아이들은 평생 비주류로서의 패배감과 낮은 자존감 속에 살아가야 할까요? 슬초맘은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이 '주류 사회 진출' 이라는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두 번째 구호는 바로 "100% 미국인이자 100% 한국인으로!"라는 구호입니다. 그런데 이건 아까 그 첫 번째 구호보다도 현실화시키기 더 어려운 구호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가능할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 부모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3가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슬초맘의 경험으로 볼 때, 100% 미국인이자 100% 한국인으로 키우려면 아이의 언어와 문화의 습득 단계에서부터 머리 속에 두 개의 프레임을 짜 주어야 합니다. 즉, 집에서 단순한 레벨의 한국어를 사용하고 토요일에 한글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 저절로 100% 미국인, 100% 한국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 부모가 스스로는 한국인 커뮤니티를 절대 벗어나지 않고 미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극도로 주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경우라면, 아이들 역시도 그 모습을 보며 두 개의 언어와 문화보다는 하나의 언어와 문화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구호는 바로 "우리는 우월한 한민족이니 이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맹위를 떨쳐야 한다"는 구호입니다. 이런 부모들은 삶의 방식과 교육에 있어서 한국 문화와 한국 언어만을 고집하지만, 미국 문화와 교육 속에 노출되어 자라나고 있는 자녀들을 도무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와 언어를 ‘강제' 받은 아이들에게서 슬초맘이 간간히 발견한 것은 바로,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이었습니다.
‘1세’ 슬초맘은 이 ‘2세 교육’에 있어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노력 가운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부모와 자녀의 언어 및 문화 차이에서 오는 세대 간의 충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이는 오직 부모와 자녀와의 대화와 신뢰 및 상호 존경의 관계로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 역시도 아이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강요와 비난 속에서 자라난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아이에게 먼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 및 언어와 문화의  자연스러운 습득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세 교육,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때로는 미국인으로 또는 때로는 한국인으로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풍성한 축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부모들은 아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먼저 본을 보이고 아이의 입장에서 배려하며, 아이가 비록 둘 다에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그치며 기를 죽일 것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세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뻔뻔하고 당당하던 슬초가 어느새 틴에이저가 되었습니다. 나름 유창하지만 뭔가 2프로 부족한 허당 한국어의 달인 슬초도 비록 둘 다 완벽하지는 못할 지라도 두 문화를 품고 갈 수 있는 그럭 넉넉하고도 당당한 ‘2세’로 커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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