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단상: “한 푼만 줍쇼!”와 “봄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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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해 드려볼까 합니다. 아마 한번쯤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20년대,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의 한 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이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나는 맹인입니다(I am a blind).”라고 쓰여진 글을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전 바구니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각장애인 앞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의 목에 걸려 있는 팻말의 글귀를 바꿔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고쳐진 글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봄이 곧 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답니다 (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see it).” 이 글귀를 바꿔준 사람은 유명한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불톤(1896~1966)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동적이길래 구걸하는 동전 그릇이 가득 찼을까요? 첫 번째 문장과 불톤이 써 주었다고 하는 두 번째 문장을 기술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맹인입니다.’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설명입니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 전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읽는 이에 따라서는 돈을 주어야만 한다는 식의 무언의 강요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저는 봄을 볼 수 없답니다’ 라는 문장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앞세우고 부정적인 내용을 뒤따르게 함으로써 읽는 이의 마음을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읽는 이에게 강요가 아닌 자기 주도적인 공감을 심어준 것이지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 맺음입니다. 불톤이 고쳐주었다고 하는 문장은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게 연결해 줍니다. 추운 겨울, 모두가 봄을 기다리는 상황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가슴에 스며들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불톤의 글귀처럼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먼저, 나를 듣는 사람의 입장에 놓고는 자신의 처지와 요구를 생각해 봅니다.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공통의 관심사나 공감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는 그 공감대를 소박하지만 부드러운 말로 덧칠해 봅니다. 상대에게 가장 달콤한 말이 무엇일까 잠시 고민해 봅니다. 그리고 그 달콤함을 배경으로 나의 필요를, 아니 나의 마음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필요보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당신의 마음을 더 강하게 느낄지 모릅니다.
흔히들 ‘I-talking’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표현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I-talking’이전에 ‘You-thinking’을 먼저 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대화, 마음을 움직이는 대화가 될 것 같습니다. 내 처지가 괴롭고 힘들어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은 불톤보다 훨씬 더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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