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만났다. 세상 이치를 깨달은 선사처럼 맑은 눈빛이었다. 눈빛보다 더 따뜻한 마음 온도를 지닌 사람이 화두처럼 꺼내 든 것은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묻는가’ 였다. 정답을 요구하는 물음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인은 되려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시는 안이하고 나태한 의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몽둥이다.”
우리가 진짜 정답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어리석음과 두껍고도 두꺼운 고정관념, 눈 앞을 가리는 온갖 습관들, 자기 좋은 것만 보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체계에 길 들려진 왜곡된 것이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고 질문하고 질문할 때 비로소 사물의 진짜와 만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의 사물에는 만 가지 이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이름을 세어봐야 열 손가락을 넘기기 힘들다. 사물이나 자연, 세계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이름을 물으려면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사물이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더는 그 이름을 묻지 않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이 되어도 그 물음을 잊지 않은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물론 시인도 어른이 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른이 되어도 제 안에 어린이를 잃지 않은 사람이다.”
죽비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와 만나고 싶어졌다. 내 기억 속에 잠든 유년의 나이테들 속으로 들어가면 어른을 동경하던 나와 만날 수 있다. 그때는 어른이 된 내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슈퍼맨’ 이었다. 비범한 능력으로 지구를 지키고 싶었던 유년의 슈퍼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라한 중년의 어른과 마주하고 있다. 꿈을 잃어버려 어른이 된 것이다. 꿈과 욕심을 맞바꿔 산 세월 동안 점점 초라해졌고 마음속에 있던 어린 나와는 멀어져갔다.
좋은 차를 타려고 남들보다 2배는 더 일하고, 좋은 집을 가지려 밤낮없이 일하는 우리에게 ‘시’ 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시 한 편을 읊조린다고 삶이 정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 시간에 물욕을 채우고 남을 시기하고 기만하며 얻는 쾌감 속에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에게는 뭐라고 말할 것인다.
먼 훗날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와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에게 읽어주려고 시집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에게 편지를 쓴다.
“미안했다. 그동안 너를 잊고 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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