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팔이 트럼프, 신이 보낸 ‘후보’로 끝나야 한다


‘미국민중사’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미국 대선에 한 시민이 자동차에 이런 스티커를 붙였다. “우리가 투표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후보는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 대통령 선거 때마다 하고 싶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최소한 공화당 후보전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라도 그렇다. 솔직히 그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30%가 넘는, 공화당 후보 중 최고 지지를 얻고 있다 한들, 그 지지자들 중에서도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기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의 무데뽀 속사포를 즐기는 것일뿐, 그가 진짜 대통령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까진 안 바랄 것이다.
반짝 인기일 수도 있고, 거품일 수도 있는 그의 질주에 대해 호들갑 떠는 것도 그래서 무의미하다. TV 토론회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고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것도 헛되다. 진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면, 또 된다면 그건 용서하지 못할 일이지만 마치 대선을 자신의 놀이터 쯤으로 여기고 휘젓고 다니는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터.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가 종횡무진하게 허용한 미국의 현 정치판이다. 공화당 후보가 17명이나 되는데 트럼프보다 모두 뒤쳐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특히 미국인들의 감성과 이성을 뒤흔드는 정치가나 리더, 아니면 최소 선동가로서도 그보다도 함량 미달이라니 반성해볼 필요는 있다. 
미국인들도 뭔가에 염증이 나있었던 것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회의에 빠졌고, 미국식 당파주의나 부의 불균형 현실에 은근 화가 나 있었던 게 분명하다. 
가장 놀라운 건 미국인들의 ‘신보수적’ 회귀 욕구다. ‘과거 위대한 미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트럼프의 선동에 환호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를 ‘저항자들의 리더’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반증이다. 스스로를 저항자의 위치로 여기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마치 빼앗긴 영토나 영역을 되찾자는 선동으로 들리는데 누구에게 뭘 빼앗겼다는 말인가. 바로 미국에서 새롭게 형성돼 세력이 커져간 공동체들이다. 이들 신생 공동체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마이너리티다. 이민자, 동성애자, 소수 민족, 여성, 이슬람 등 다양하다. 
요즘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이나 태도를 보인다면 좋은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움추러든 미국의 현실이 싫다며 분연히 일어나 저항하자는 그의 선동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들이 싫으면 싫다고, 꺼지길 바라면 그렇게 말하라고 부추키며 직접 선봉에 나서 공공연하게 떠드는 트럼프를 영웅시하는 건 그들 내면에 억눌려진 분노가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는 역설한다. 멕시코가 미국에 이민자를 보낼 때 상위 계층을 보내는 게 아니다. 마약과 범죄, 그리고 강간범을 보낸다고. 전쟁 포로였던 전 대통령 후보 매케인에 대해서도 서슴치 않는다. 나는 잡히지 않은 사람을 더 선호한다고. 나는 부자이고 승자이기 때문에 미국을 승자의 나라로 다시 바꿀 수 있다고. 
기가 차는 말인데도 그에 환호하고 흥분하며 열광하며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다. 유색 인종에 대한 불신이나 두려움, 경멸로 뭉친 보수파 유권자들일수록 더 그렇다. 실제 미국 보수파의 90%는 백인이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도 열에 아홉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를 싫어할 이유는 없다. 그를 신이 보낸 후보로 여긴다 해도 어쩌랴. 그저 후보는 후보일 뿐이라고 위안할 밖에. 
‘미국의 정치 문명’ 저자는 말한다. 구대륙의 타락에서 탈출해 새 도덕적 국가로 탄생한 미국이 전 세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도덕을 솔선수범한다고 믿는다고. 즉, 다른 국가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자격과 능력을 지녔다고 확신하는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라는 자의식으로 미국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러셀 커크는 여기에 한 술 더 떴다. 미국은 신의 의도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나라이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를 찾아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고. 마치 유대 민족이 선지자를 통해 신이 계시해준 왕을 찾아내는 것처럼.  
트럼프의 보수팔이에 이민자로서 불길과 불쾌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기도한다. 신이 우리를 이곳에 보내길 정하셨다면 우리를 위한 후보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트럼프보다는 더 큰 입을 가진 후보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