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광고는 아마도 통신업계의 광고일 것이다. 빠르다고 다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닌데 통신사들은 저마다 한결같이 LTE급을 주장한다. ‘3배 빠른 광대역 LTE’ A사의 서비스는 최대 225Mbps 데이터 속도가 구현 되는 기술이라고 거품을 물고 선전을 한다. 하지만 요금할인이나 서비스에 대한 질적인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빠른 것만 내세우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인은 불만을 토로한다. 서울에서 온 조카가 제일 못 참았던 것은 우리 집의 인터넷 속도였다. 너무 느려서 게임을 할 수가 없다며 서울의 빠른 인터넷을 그리워했다. 나는 아무 불편을 못 느끼는데. 흠!
뭐든 급하게 하다보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졸속행정이나 졸속시공과 같은 창피한 말이 생긴 것이다. 부실시공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숭례문의 복원도, 최초의 서민아파트였던 와우 아파트의 붕괴도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모두 졸속시공의 예라 할 수 있다.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사후 30년이 지난 1836년에 완공되었다. 한국의 정치인이었다면 아마도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에 완공해서 뭔가를 과시해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역시 개통을 서두르느라 15년 정도의 공기를 2년 반으로 당긴 결과 “고속도로가 누워있길 망정이지 아파트처럼 세워졌더라면 벌써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부실공사를 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가장 졸속이라고 욕을 먹는 것은 아마도 교육정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게 매년 입시제도가 바뀌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경제학 용어 중에 ‘샤워실의 바보, A pool in the shower room’란 말이 있다. 바보가 샤워 실에서 갑자기 물을 틀면 너무 찬물이 나오는데, 이를 못 참고 더운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확 돌려버렸다가 뜨거운 물이 나와 화상을 입는다는 예화로 정부의 섣부른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을 한 것이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로 “경제의 흐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효과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천천히 정책변화를 수행해야 된다.”는 개념이다.
‘미국에서 살려면 줄서서 기다리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는 명언이 있다. 먼저 와서 살아 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뉴욕에 갔을 때 한국 여행사를 통해 일일관광을 했다. 이층버스에는 한국에서 온 한국 사람과 미국 내에 사는 한국 사람이 섞여 있었다. 그 구별은 아주 간단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단 5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을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참을성이 없던지 딸 보기가 창피할 정도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는 15분짜리 3D 영화를 보러 들어갔는데 기계가 작동을 하지 않아 직원이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곧 볼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의자에 앉으면 헬기를 타고 뉴욕을 투어 하는 것과 같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해서 기다렸는데 10분이 지나도 안 나오자 외국 사람들은 여유롭게 기다리는데 한국 사람만 신경질을 내며 우르르 나가서 환불을 요구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줄이 길다고 불평에, 새치기에 가관도 아니었다.
한국인 밑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빨리빨리는 다 알아 듣는다. 비위를 맞춰야 일할 수 있으니까. 물론 나도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사람이다. 하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잘 한다. 왜냐? 안하면 미국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 눈치껏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전통차를 우려내어 마시며 풍류를 즐기던 선조들의 아름다운 기다림은 온데간데없고 한국인들의 민족성은 어느 순간부터 빨리빨리형’으로 변해버렸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졌는데 나라밖에서 타 민족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일터에서도, 집안에서도 ‘빨리빨리 증후군’에 사로 잡혀 ‘샤워실의 바보’처럼 살지 말고 조금만 속도를 늦췄으면 좋겠다. 걸음걸이. 말, 행동, 하물며 밥 먹는 속도까지도 말이다. 숨차게 달리지 않아도 워낙 부지런한 민족이라 어디 가서 밥 굶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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