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인생 2막 박광훈(비행기 정비사), 박혜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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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광훈(비행기 정비사), 박혜자(소설가)

한동안 책을 읽어도 좋은 시를 읽어도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은 늪처럼 꿈과 희망마저 집어삼키고, 비상구의 불빛마저 꺼진 미로에 혼자 남겨진 신세 같았다. 그리운 사람들을 뒤로하고 태평양을 건너와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처럼 25년을 달려왔지만,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오늘도 습관처럼 달린다.

삶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라고 되뇌어보지만, 현실은 탄성이 붙은 속도 때문인지 수많은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친다. 나를 살릴 수 있는 수많은 표지판을 무시하고’ 시시포스’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를 보고 우리를 본다. 모두 속도에 미쳐있다. 속도에 미치지 않고 살 방법을 묻는다면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민자의 삶이 일반인의 삶보다 질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린 그들보다 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한 거뿐이다.

속도의 삶에서 이탈해 시골에 정착한 이들을 만났다.
그들도 한때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속도전을 펼쳤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골의 한적한 전원생활의 삶이 아니라. ‘속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보니 그때야 주변이 제대로 보였다는 것이다. 시가 읽히고, 음악도 들어오고, 꿈이 보였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를 사랑하는 여자와 워런힐을 꿈꾸는 남자가 사는 집은 TAMS를 다녔던 아이들이 떠난 뒤라 동그라니 부부 만의 공간이었다. 빈 둥지 증후군을 심하게 앓던 여자는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남자는 어릴 때 불던 클라리넷을 다시 꺼내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여자는 한국 문단에 소설로 등단한 ‘소설가’가 되었고, 남자는 색소폰연주로 남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다.

제2의 박완서를 꿈꾸며 이민세대의 애환을 소설을 쓰고 싶은 여자와 더 멋진 연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싶은 남자가 인생 2막의 주인공들이다. 그들만의 연극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가 대본인 셈이다. 조금 늦었지만, 그들은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꿈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생명을 불어놓는 중이다. 어느 날 이방인처럼 속도의 탄성에서 이탈하며 얻은 삶이었지만, 이제는 오롯이 제 삶의 주인공이 되어 멋진 무대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인생 2막의 ‘커튼콜’을 준비하며 글을 쓰고 숨을 불러 넣어 색소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민생활의 관건은 속도다.
안심하고 조금만 늦추면 시가 가슴을 파고들고, 음악이 들어오고 막혔던 혈마저 뚫리게 된다. 우리가 속도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속도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모든 게 막혀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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