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단상: 시계를 어디에 사용할까요? 신자겸 하나로교회담임

time470.jpg


얼마 전, 설교를 준비하다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 시간을 계산하는 지혜 =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1760~1840년대)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우리 모두가 의심의 여지 없이 생각하고 있는 ‘한 시간 동안…’ ‘세 시간 반 동안…’ 하는 시간 개념이 당시에 없었습니다. 대신 ‘소 젖 한번 짜는 시간’ ‘구두 코 한번 손질할 시간’ 등과 같은 식으로 시간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옷 수선 하는 가게에 바느질감을 맡기면서 ‘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묻는다면, ‘소 젖 두 번 짜고, 구두 코 세 번 손질할 시간 후에 오세요’ 라는 대답을 들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당시의 장인(匠人)들은 시급 (時給)을 받는 대신 성과급(成果給)으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분 단위’까지만 나뉘었던 시간을 ‘초 단위’로까지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추시계가 발명됨에 따라 소 젖을 짜고 옷감을 짜며 밭이랑을 일구는 등… 이렇게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들과 연관되어 느껴지던 시간에 대한 생각은 그야말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이 수학적으로 개량적으로 정확성을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공장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타임 카드’를 이용해서 출퇴근 시각을 기록하고, 일한 시간만큼의 보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그의 에세이 “젊은 상인에게 보내는 편지(Advice to a Young Tradesman)”의 서두에서 “Time is money…”라고 말한 것도 시간의 개념이 이처럼 혁명적으로 바뀐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말하길, “시간은 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만약 그대가 하루에 10실링을 벌 수 있는 사람인데, 반나절을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거나 돌아다니면서 6펜스를 썼다면 당신은 6펜스 외에도 5실링을 더 낭비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 시간을 맡기는 지혜 = 저희 아이들은 아직 시계를 읽을 줄 모릅니다. ‘큰 바늘이 4를 지났고, 작은 바늘은 7에 있어’ 라고 읽을 줄 아는 수준입니다. 언젠가 큰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래고워치(Lego Watch)를 사주었지만 녀석에겐 그저 장난감일 뿐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수영할 수 있는 시간(오후5시)’ ‘저녁 먹을 시간(오후6시)’ ‘잠 잘 시간(오후8시30분)’ 등과 같은 시간 개념이 더 익숙합니다. 아직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요즘은 방학이라 더 시간 개념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시간을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딱히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인도하는 대로 따르면 됩니다. 시간 계산은 아빠인 저의 몫입니다. 솔로몬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 때에 맞게끔 지으셨고, 또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와 미래를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3장11절, 솔로몬의 지혜, NRSV역본)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와 ‘미래’라고 불리는 시간을 인지하는 능력(시간개념)은 주어졌지만, 미래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능력(예지력)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개념을 미래를 걱정하는 데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저희 아이들이 ‘큰 바늘이 1에서 3으로 갈 동안 놀았으니, 20불 벌었네’ 라고 시간의 가치를 매기거나 ‘내일은 또 뭐하고 놀까?’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 개념은 앞날을 걱정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프랭클린과 같이 현재를 성실하게 살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시계나 달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앞날을 걱정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현재를 성실히 사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972-488-019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