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버지 얼마나 기억해 드렸던가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 이는 모리시카 겐지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 제목이다. 아무리 잘나고 성공한 아버지라 해도 자식 때문에 울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겐지는 특별히 헤밍웨이의 셋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심장하게 거론한다. 
행동주의 남성적 작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3남인 그레고리 헤밍웨이가 어느날 마이애미에서 발가벗은 채 외설 혐의로 체포됐다. 그것도 여장의 모습으로. 성전환수술을 해 여성이 됐던 그, 혹은 그녀는 끝까지 불우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명성과는 너무나 다른 길로 난 결론. 세계적인 작가라 해도 그 아들의 앞길을 터주지는 못했던걸까. 그 아들 때문에 우는 길밖에 없었던 것일까. 
“내 아들은 총에 맞아 죽기 전에 이미 정신병으로 죽었다.” 이는 얼마전 달라스 경찰본부를 습격하다가 결국 사살된 한 남성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 아들은 경찰청을 습격하기 전날에도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줬다. 아버지는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아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환각은 물론 분노 조절 장애를 겪고 있었고 그래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은 많았지만 밴에다 폭발물을 장착하고 무장한 채 경찰청으로 가서 총을 쏴대는 무모한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었다. 그러나 결국 그 아들은 경찰의 총에 맞아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아버지는 또 울어야 했다. 
그 아들이 경찰에게 분노한 이유도 슬프다. 이혼하고 11세된 자기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모친에게 넘겨야 했는데, 그렇게 만든 게 경찰이나 판사와 같은 공권력이라고 믿었던 것. 자신에게 분명 아들을 키울 능력도, 정신적 상태도 안되는 걸 알텐데도 아들과 자신을 갈라놓은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한 나약한 영혼의 아버지. 그의 마지막 항거는 총으로 표현됐지만 그 역시 총으로 삶을 마감했다.
아들도 그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총을 쏴대다 죽었고,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아직도 믿고 있다. 미국산 가족적 비극이다. 모친은 예상외로 냉정했다. 차라리 그를 수감하든지 정신병원에 보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끝까지 옆에 끼고 있으려다 마침내 아들을 죽음으로 잃었고, 모친은 차라리 병 때문에 곁에서 떠나보내더라도 시설에 맡겼다면 살아는 있었을 것이라는 항변이다. 누구의 사랑이, 누구의 울음이 더 큰 걸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또 아버지 어머니에게 총을 쏠 겁니다.” 프리스코에서 부모를 살해했던 10대 소년이 그를 상담한 심리학자에게 한 말이다. 지난해 발생한 이 사건은 십대 아들의 잔혹함과 더불어 냉혈함이 더 충격이었다. 부모를 총으로 쏴죽인 이유도 허무했다. 숙제하라고 하고 잔디를 깎으라고 하는 등 너무 귀찮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감정없는 야수처럼 아버지에게 세번이나 총을 쏴 확인사살까지 했고, 질겁해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엄마에게까지 총을 갈겼다. 그는 지금도 말한다.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고, 그것이 부모라 해도 참을 수 없다고. 그래서 지금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또 총을 쏠거라고. 부모는 죽어서도 울 일이다. 
옛날에는 아들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춰서 불초자(不肖子)라고 불렀다. ‘닮지 못해 죄송하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감히 부모의 덕과 지혜를 닮지 못한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며 부모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자식의 자세다. 사실 부모 사망 후 3년상을 지내라는 유교 사상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행함을 살핀다. 3년 동안 아버지가 하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효라고 할 수 있다”는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버지의 지(志)와 행(行)을 기억하며 오랫동안 바꾸지 말고 따르라는 것이다. 사실 그건 부모에 대한 최대의 예우다. 그러나 부모로선 자식들이 그렇게 오래 간직하며 따를 뭔가 훌륭한 모습을 남겨야할 부담이 있음도 사실이다. 
6월 말미에 걸쳐있는 파더스데이. 이 날에 아버지를 기억해주는 것이 마지못한 예의 같기도 하다. 다만 이민자 아버지들의 무거운 어깨만이라도 알아줬음 한다. 총으로 부모를 쏘고 또 총에 맞아 죽는 불효의 모습들이 횡행하는 이국 땅까지 아이들을 끌고 이민와야 했던 아버지들. 자녀들로 3년을 바꾸지 않고 따르고 기억하게 할 그 무엇이라도 정녕 남길 수 있는지 떨고 있다. 그리고 자식들 때문에 오늘도 울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끝끝내 고단하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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