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기독교학생연합회 회장으로 학교 복음화를 위해 어떤 행사를 수개월 동안 준비해오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행사를 몇 일 앞둔 상황에서 학교에서는 대학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데모가 가열되었다.
행사를 삼 일 앞둔 어느 날 연합회 지도교수는 이 행사를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네가 잘 선택하라고 종용하셨다. 그 때 나는 그 동안 기도한 것을 생각하며 행사추진 의사를 교수에게 정확히 밝히고 나오는데 무척 암담한 심정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두 장의 전도지를 받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현 상황에 대해 기도하다가 우연히 전도지를 펼쳤다. 각각 다른 교회에서 제작한 전도지인데 동일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하나님이 학교의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늘 하듯이 생명의 삶으로 큐티를 하고 간증란을 읽고 싶어 펼쳤는데 동일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소름이 끼쳤다.
데모의 열기가 가속화 되어 급기야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 버린 상황이었지만 나는 거듭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신 말씀을 붙잡고 학교 서클 담당자들과 지도교수들에게 비상연락을 취하여 함께 모여 통성기도를 하였다. 닫힌 교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회를 막 끝낼 즈음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교문이 열렸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갓난 아기는 울음으로 소통하는데 그는 더 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고 부모도 그 울음 소리를 듣고 기저귀를 갈아줄 것인지 젖을 줄 것인지 아니면 약을 먹여야 할 지를 정한다. 갓난아기는 성장해 가면서 진로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등 삶은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경에는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네가 만일 나에게 철저하게 순종하고 내 뜻대로 살며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행하고 내 종 다윗처럼 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면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하여 내가 다윗에게 했던 것처럼 너를 축복하고 네 자손이 계속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겠다”(열왕기상 11:38)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런 든든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 열왕기서를 슬프게 장식하게 된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현재의 문제에 대한 반응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신뢰보다 자기 생각을 더 중요시함으로 인한 자기사랑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많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자기사랑이다. 자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존감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가 귀하듯 타인도 그렇게 배려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지닐 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배제된 나르시즘에 가까운 이기적인 자기사랑은 배척해야 한다.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세계를 어둡게 하는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은 타인 존중이 배제된 극단적인 자기애의 과시일 뿐이다. 이 시대는 이기적인 자기사랑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부끄러운 뒷거래, 부모의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사람들, 게임에 집중하느라 갓난 아기를 굶겨서 죽게 한 부모,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상대를 비판하는 사람들 등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인생은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그 선택은 달라진다. 이기적인 자기사랑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 선택하든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상황 속에 안절부절 하지 말고 인생의 큰 그림을 가지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자.
유한한 인생을 의지하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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